AC.202, 심화 2, ‘양심은 영적 인간의 퍼셉션’
AC.202.심화
2. ‘양심은 영적 인간의 퍼셉션’
우리도 저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저런 퍼셉션을 회복할 수 없나요? 우리도 이 세상을 저런 퍼셉션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AC를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했다는데, 왜 우리는 저렇게 살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늘 고민하고, 추론하고, 헤매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야 할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태고교회의 퍼셉션을 그대로 되돌려 주시지 않는 것은 우리를 덜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라는 점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방금 AC.200에서도 보았듯이 말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매우 높은 상태에 있었지만, 그만큼 그 상태를 배반할 위험도 컸습니다. 그래서 홍수 이후 인간 구조가 바뀌었고, 우리는 양심(conscience)을 통해 인도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인간이 태고교회 사람들과 똑같은 퍼셉션을 회복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체계 안에서는 거의 기대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류 전체의 일반적 상태로서는 그렇습니다. 인간 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양심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심을 단순한 도덕 감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양심은 주님께서 말씀과 진리를 통해 인간 안에 만드신 내적 안내자입니다. 그래서 영적 인간에게 양심은 태고교회 사람들의 퍼셉션에 상응하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목사님께서 AC를 오랫동안 읽으시면서 경험하시는 어떤 순간들은 퍼셉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구절을 읽다가 ‘아, 이것이구나’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이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또는 어떤 사람을 대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는 조용한 내적 인도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혹은 어떤 진리를 처음 접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참이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태고교회의 퍼셉션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다른 종류의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영적 인간의 양심은 천적 퍼셉션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종종 퍼셉션을 너무 낭만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의 상태는 분명 놀랍지만,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길도 결코 열등한 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의심 속에서도 믿음을 선택할 수 있고,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순종할 수 있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일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 가운데 ‘주님은 점진적이시다’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마치 한낮의 태양 빛과 같았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도는 새벽빛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태양 빛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역시 같은 태양에서 오는 빛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런 퍼셉션을 회복할 수 없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스베덴보리적으로 답한다면, ‘태고교회가 가졌던 형태 그대로는 아닐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오늘도 사람을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며, 양심과 내적 인도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AC를 읽으며 자주 보이시는 태도, 곧 ‘상대방의 선의를 보려고 노력한다’, ‘극단으로 가지 않으려 한다’, ‘주님의 은근한 섭리를 배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모습들은 어쩌면 퍼셉션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퍼셉션이 향하던 방향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태고교회의 퍼셉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된 양심과 진리 안에서 가능한 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후에는, 지금 이 땅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훨씬 깊은 이해와 지각이 우리에게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AC.182-189를 읽으면서 목사님께서 자주 감탄하셨듯이, 주님께서는 인간을 한 번에 완성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AC.202, 창3:2-3, ‘만지지도 말라’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
bygrace.kr
AC.202, 심화 1, ‘마5:37’
AC.202.심화 1.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5:37)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