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2, 심화 2, 한역, ‘눈을 감았던 자’
AC.212.심화
2. 한역, ‘눈을 감았던 자’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민24:3)
영어로는 ‘눈이 열린’을 한역(韓譯)에서는 왜 ‘눈을 감은’으로 번역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민24:3은 번역본마다 차이가 상당히 큰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AC.212를 읽다가 보면 ‘스베덴보리는 분명 ‘눈이 열린 사람(man whose eyes are opened)’이라고 인용하는데, 왜 한역(韓譯, 한글 번역)은 개역개정이든 개역한글이든 다 ‘눈을 감았던 자’라고 번역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문제는 히브리어 원문에 있습니다. 민24:3의 해당 표현은 해석상 논란이 오래된 구절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눈이 열린 사람’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영어 KJV는 ‘the man whose eyes are open’이라고 번역했고, 스베덴보리도 이 전통적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히브리어 연구에서는 이 단어를 ‘감긴’, ‘닫힌’, ‘덮인’ 쪽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번역은 ‘눈을 감았던 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잠을 잤다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환상이나 계시를 받는 특별한 상태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같은 장 4절을 보면 더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전능자의 환상을 보고 엎드려서 눈을 뜬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 가운데는 ‘falling into a trance, but having his eyes open’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육체적으로는 황홀경이나 깊은 영적 상태에 들어가 있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눈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AC.212에서 이 구절을 인용할 때 관심을 두는 것은 히브리어 문법 논쟁이 아닙니다. 그는 발람이 영적 환상과 계시를 받는 상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눈’이 단순한 육체의 시각이 아니라 내적 인식과 이해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흥미롭게도, 설령 한역의 ‘눈을 감았던 자’를 따른다 해도 AC.212의 논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발람은 결국 환상 가운데서 영적 사실을 보게 된 사람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핵심은 ‘눈이 감겼느냐 열렸느냐’의 문자적 표현보다, 발람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AC.212의 문맥에서는 KJV 계열의 ‘눈이 열린 사람’이 스베덴보리의 논증에 더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만, 한역의 ‘눈을 감았던 자’도 결국은 환상과 계시를 받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크게 멀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상응 해석의 측면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눈이 열린 사람’ 쪽이 AC.212의 ‘눈 = 이해, 인식’이라는 논지와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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