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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3, 심화 5, ‘계3:18’

bygracetistory 2026. 6. 17. 11:52

AC.213.심화

 

5.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3:18) I counsel thee to buy of me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r (Rev. 3:18).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벌거벗음(nakedness)이 선과 진리를 상실한 영적 상태를 의미하고, 반대로 (raiment)은 그 상태를 덮어 주는 진리와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는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외적으로는 풍요롭고 종교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에 따르면 ’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옷으로 가리듯, 영혼은 진리로 덮여 보호받습니다. 특히 흰옷’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옷을 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초청입니다.

 

AC.213의 문맥에서 보면 이것은 창3:7과 직접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덮개였습니다. 반면 계3:18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 만든 변명과 자기 의로는 벌거벗음을 덮을 수 없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진리만이 그것을 덮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서 벌거벗은 수치(shame of thy nakedness)라는 표현은 AC.213의 핵심을 잘 보여 줍니다. 2:25에서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순진무구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3 이후에는 벌거벗음이 수치가 되었습니다. 선과 진리의 보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 상태를 가리켜 벌거벗은 수치’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의 구원관을 잘 보여 줍니다. 주님은 단순히 너는 벌거벗었으니 부끄러운 존재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은 인간의 결핍을 폭로하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벌거벗음을 드러내시면서도 그 벌거벗음을 덮을 옷도 함께 주십니다.

 

그래서 AC.213에서 계3:18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벌거벗음’이 영적 수치와 결핍을 의미하고, ‘흰옷’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벌거벗음을 깨닫고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을 엮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이 두 본문 사이에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 노력과, 그 노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AC.213, 심화 4, ‘겔23:29’

AC.213.심화 4. ‘겔23:29’ 그들이 너를 벌거벗은 몸으로 두어서 네 벗은 몸을 드러낼 것이라 (겔23:29) They shall leave her naked and bare, and the nakedness shall be uncovered (Ezek. 23:29).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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