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AC 창3

AC.228, 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bygracetistory 2026. 6. 26. 19:20

AC.224.심화

 

1.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

 

이 표현은 스베덴보리를 처음 읽는 분들뿐 아니라 오래 읽은 분들도 한동안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보통 진리’와 신앙’을 거의 같은 뜻처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는 둘 사이에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진리(truth)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참된 내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주님만이 생명이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악은 피해야 한다’, ‘사랑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신앙(faith)은 그런 진리를 사람이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 상태를 말합니다. 즉 진리가 객관적인 내용이라면, 신앙은 그 진리를 믿고 붙드는 인간 쪽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란, 단순히 참된 명제가 아니라, 사람이 믿고 받아들여 신앙의 내용이 된 진리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자체로는 진리(truth)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아직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이것이 주님의 뜻이며 참된 길이다’라고 믿는다면, 그 진리는 그 사람 안에서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가 됩니다.

 

즉, 진리(truth)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늘의 진리이고,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는 사람이 믿고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 안에 들어온 진리인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을 믿는 단계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돕고, 섬기고, 희생한다면 그것은 이미 삶 속에 구현된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자주 이 둘을 짝으로 말합니다.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과 열매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이웃 사랑이 중요하다’라고 아는 것은 씨앗이고, 실제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사랑(love)으로부터 진리(truth)를 알았습니다. 즉 사랑이 먼저였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참인지 곧바로 지각(perception)했습니다. 반면 홍수 이후의 영적 인간은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먼저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믿고, 그 진리에 따라 살려고 애쓰며, 마침내 체어리티(charity)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종종 태고교회를 설명할 때는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강조하고, 고대교회 이후를 설명할 때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강조합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천적 인간(celestial man) 왜 그런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선한 것임을 안다 하는 사람이고, 영적 인간(spiritual man)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AC.228에서 천사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천사들은 어떤 생각이 사람 안으로 들어올 때, 이것이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허무는 것인가, 혹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파괴하는 것인가를 즉시 알아차립니다.

 

예를 들면, ‘용서는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다’라는 냉혹한 마음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사람 자신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훨씬 더 섬세하게 지각한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AC를 읽으실 때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를 간단히 사람이 믿고 붙들고 있는 주님의 진리’, 혹은 신앙의 내용이 되는 진리 정도로 이해하시면 대부분의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읽히실 것입니다.


 

AC.228, 창3:9-10, '천사들의 지각(perception)의 정교함'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