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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0, 창3:11-13,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을 지배하던 사랑’

bygracetistory 2026. 6. 27. 07:35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 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3:11-13)

 

AC.230

이 후손들의 지배적인 악(ruling evil)은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존재하는 만큼의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은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집안과 가족 안에서 살았으며, 재산을 축적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The ruling evil of this posterity was the love of self, without their having at the same time so much of the love of the world as exists at the present day; for they dwelt within their own households and families, and had no desire to accumulate wealth.

 

 

해설

 

이 글은 매우 짧지만,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 말기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그는 여기서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세상 사랑(love of the world)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악의 두 큰 뿌리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려는 사랑입니다. 남보다 높아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자신의 판단을 최고로 여기려는 경향입니다. 반면 세상 사랑은 재물과 소유와 부를 축적하려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태고교회의 이 후손들은 이미 자기 사랑에는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AC.229에서 본 것처럼,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믿기 전에 먼저 자기 감각과 이성으로 확인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자기 사랑의 특징입니다. 자기 자신이 최종 심판자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직 세상 사랑은 오늘날만큼 발전하지 않았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그들은 대규모 국가나 상업 체계를 이루고 살지 않았으며, 주로 가족과 씨족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따라서 부를 무한히 축적하거나 경제적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욕망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보통 우리는 자기 사랑과 탐욕을 하나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둘을 구별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에는 관심이 없어도 자기 자랑과 자기 우월감에는 깊이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명예에는 관심이 없어도 돈과 소유에 강하게 집착할 수 있습니다.

 

AC.230에 따르면 태고교회 말기의 사람들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보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과 의지를 따르려는 욕망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창3의 이야기와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부자가 되라고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잡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너희가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문제는 소유가 아니라 자기 높임이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인간 역사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독특한 시각도 보여줍니다. 그는 인류의 타락이 한 번에 완성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먼저 자기 사랑이 커졌고, 후대에 이르러 세상 사랑도 함께 커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은 이미 심각하게 타락했지만, 오늘날 인간들이 보이는 온갖 형태의 탐욕과 물질주의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30의 핵심은, 태고교회의 이 후손들을 무너뜨린 주된 악은 재물욕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거대한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자기 판단을 주님의 지혜보다 높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게는 바로 그것이 모든 타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은 현대 독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세상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가, 아니면 자기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가?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후자가 더 깊고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랑조차도 결국은 자기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가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3의 비극은 재물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님보다 더 신뢰하려는 자기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AC.231, 창3:11-13, ‘모든 교회 시대를 꿰뚫는 근본 악의 뿌리’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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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9, 창3:11-13,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AC.229-233)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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