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31, 창3:11-13, ‘모든 교회 시대를 꿰뚫는 근본 악의 뿌리’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 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창3:11-13)
AC.231
홍수 이전 태고교회의 악, 홍수 이후 고대교회의 악, 그리고 유대교회(the Jewish church)의 악과 주님 오신 후 이방인의 새 교회(the new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의 악, 그리고 오늘날 교회의 악도 모두 같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이나 말씀(the Word)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과 자기 감각들(their own senses)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앙이 없게 되며, 신앙 없는 곳에는 이웃 사랑(the love of the neighbor)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모두 거짓과 악이 됩니다. The evi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existed before the flood, as well as that of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also that of the Jewish church, and subsequently the evil of the new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fter the coming of the Lord, and also that of the church of the present day, was and is that they do not believe the Lord or the Word, but themselves and their own senses. Hence there is no faith, and where there is no faith there is no love of the neighbor, consequently all is false and evil.
해설
이 글은 AC.194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창3의 해설을 하나의 원리로 요약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인류 역사의 여러 시대를 차례로 열거합니다. 홍수 이전의 태고교회, 홍수 이후의 고대교회, 유대교회, 주님 강림 이후의 교회, 그리고 현재의 교회까지 언급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이 모든 시대의 근본적인 악이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 형식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타락의 뿌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뿌리는 ‘주님과 말씀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 감각을 더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AC.229의 내용을 더욱 확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믿기 전에 먼저 확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감각과 자기 이성을 신앙의 재판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태도가 이후 모든 교회 시대에도 반복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지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평생 학자로 살았고, 과학자였으며, 철학자였습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이성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성이 주님 위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태도는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납득해야만 주님 말씀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는 창3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때문에 신앙이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최종 권위로 삼기 시작하면, 사실상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이 사라지면 체어리티(charity)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AC.231의 매우 중요한 연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과 사랑을 별개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체어리티는 그 진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신앙이 사라지면 체어리티도 결국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기 시작한 사람은 결국 이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 결과는 모두 거짓과 악이 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논리는 분명합니다. 자기 자신이 최종 기준이 되면, 진리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선도 자기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변질됩니다. 그 결과 진리는 거짓으로, 선은 악으로 변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AC.210의 own, AC.215의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 AC.229의 ‘먼저 확인한 후 믿겠다’를 따라오신 흐름으로 보면, AC.231은 그 모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결론처럼 보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스베덴보리가 특정 시대만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태고교회도, 고대교회도, 그리고 유대교회와 기독교회, 현재 교회도 같은 위험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 본성입니다.
그래서 AC.231은 단순한 역사 해설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교회에 대한 경고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는 먼저 외부 박해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창3에서 본 최초의 타락은 한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반복되는 영적 원형(archetype)이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두 길 사이에 서 있습니다. 주님과 말씀을 신뢰하는 길,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기 감각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AC.231은 인류 역사의 모든 비극이 후자의 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30, 창3:11-13,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을 지배하던 사랑’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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