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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8, 창3:14-19, ‘17절 개요’

bygracetistory 2026. 7. 5. 08:3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3:17)



AC.238

 

그다음에는 이성(rational)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묘사됩니다. 곧 그것이 동의(consent)하였고, 그 결과 스스로를 저주하였으며, 지옥(infernal)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참된 이성(reason)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추론(ratiocination)만 남게 되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해설

 

이 글은 AC.237의 연속입니다. 앞 구절에서는 교회를 의미하는 ‘여자’가 own을 사랑하게 되어 진리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여자를 다스려야 했던 ‘이성’(rational) 자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원래 이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이성(reason)은 자기 스스로 진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이성은 주님의 빛 아래 있을 때 가장 건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성은 의지와 애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동의(consent)하였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타락입니다. 감각이 먼저 유혹했고, 의지가 그것을 좋아했으며, 마지막으로 이성이 그것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성이 스스로를 저주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주님께서 저주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성이 자신의 본래 기능을 버리고, 자기 사랑과 감각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지옥 상태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reason’과 ‘ratiocination’의 차이입니다. 한국어로는 둘 다 ‘이성’ 또는 ‘추리’로 번역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두 단어를 엄격히 구분합니다.

 

‘Reason’은 주님의 빛 안에서 진리를 분별하는 참된 이성입니다. 반면 ‘ratiocination’은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사용하는 추론입니다. 다시 말해, reason은 진리를 찾기 위해 생각하지만, ratiocination은 자기 생각을 옹호하기 위해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겸손한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reason입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은 ‘내 생각이 왜 옳은가?’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것은 ratiocination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타락 이후 인간에게 이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이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끝없는 추론과 논쟁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점에서 AC.238은 AC.229-233의 내용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입니다. 처음에는 감각을 신뢰했고, 다음에는 own을 사랑했으며, 이제는 그 잘못된 사랑을 이성이 정당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진리를 찾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타락한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전제 위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성을 진리를 향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것이 AC.238의 핵심입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단순히 의지가 타락한 것이 아니라, 이성까지도 그 타락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참된 의미의 이성(reason)은 남아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추론(ratiocination)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을 인간 정신이 지옥 상태로 떨어지는 중요한 단계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AC.239, 창3:14-19, ‘18절 개요’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창3:18)AC.239 저주(curse)와 황폐(vastation)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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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7, 창3:14-19, ‘16절 개요’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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