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67,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AC.267-271)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창3:17)
AC.267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man hearkening to the voice of his wife)는 남자, 곧 rational의 동의를 의미하며, 이로 말미암아 rational 역시 스스로 돌아서게 되었고, 따라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라는 말씀으로 뜻하는 바와 같이 외적인 사람, 곧 겉 사람 전체도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eat thereof in sorrow)라는 것은 그의 삶의 장래 상태가 비참하게 될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교회의 끝에 이를 때까지, 곧 ‘네 평생에’(all the days of his life) 그러할 것임을 뜻합니다. By the “man hearkening to the voice of his wife” is signified the consent of the man, or rational, by which it also averted or cursed itself, and consequently the whole external man, denoted by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To “eat thereof in sorrow” means that the future state of his life would be miserable, and this even to the end of that church, or “all the days of his lif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7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는 여자의 상태와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설명하였다면, 이제는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타락이 사람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라는 표현을 단순한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rational이 감각과 own의 제안에 동의한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앞에서 뱀은 감각의 차원을, 여자는 own의 욕구를 따라 움직이는 애정의 차원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자, 곧 rational까지 그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동의’(consent)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유혹은 밖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죄가 되는 것은 rational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승인할 때입니다. 따라서 창3의 타락은 감각의 유혹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rational이 그것을 옳다 인정한 데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rational 역시 스스로 돌아섰다(averted itself)’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주님에게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창3 전체에서 반복되어 온 원리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그 결과로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저주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형벌이 아니라, 질서를 떠난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영적 결과입니다.
이어지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에서도 ‘땅’(ground)을 교회의 외적 상태, 또는 사람의 외적 생명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사람, 곧 겉 사람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자연 자체가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외적 삶 전체가 내적 질서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내면이 무너지면 그 결과는 반드시 삶 전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라는 말씀도 단순히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의 장래 영적 상태가 비참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퍼셉션 안에서 평안하게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같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끊임없는 유혹과 갈등, 노력과 수고를 겪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수고는 육체적인 노동보다 먼저 영적 삶의 고단함을 가리킵니다.
또한 ‘네 평생에’라는 표현도 단순히 개인의 일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그 교회의 끝에 이를 때까지’라고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창3에서 다루는 것은 한 개인 아담의 생애가 아니라 태고교회 전체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은 그 교회가 존속하는 전 기간을 뜻하며, 그 기간 동안 교회는 점차 쇠퇴하여 마침내 홍수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설명은 앞에서 살펴본 AC.261에서 AC.266까지의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own이 애정을 왜곡하고, 감각이 그것을 부추기며, 마침내 rational이 그것에 동의하자 사람의 외적 삶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과정을 매우 질서 있게 설명하면서, 타락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사람 안의 여러 기능이 차례로 질서를 잃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AC.267은 창3:17을 통하여 타락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감각의 유혹과 own의 욕구에 rational까지 동의함으로써 사람은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돌아섰고, 그 결과 외적 삶 전체가 본래의 질서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람은 진리를 살아가는 일조차 끊임없는 영적 수고와 유혹 가운데 행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태는 태고교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절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주님의 구속과 거듭남이 반드시 필요한지를 보여주려는 스베덴보리의 깊은 영적 가르침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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