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69, 창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AC.269
여호와 하나님, 곧 주님께서 ‘땅’(ground), 곧 겉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이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돌아서고 분리됨으로써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AC.245 참조). That Jehovah God (that is, the Lord) did not “curse the ground,” or the external man, but that the external man averted or separated itself from the internal, and thus cursed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hown (n. 245).
해설
이 글은 매우 짧지만, 창3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원리를 다시 한번 선언하는 중요한 결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까지 반복해서 강조해 온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곧, 사람의 타락과 저주의 원인은 주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섭리론과 구원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3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고, 땅을 저주하시며,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는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고 설명합니다. 주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선 자체이시므로,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시거나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께서 저주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인간 편에서 일어난 영적 상태의 변화를 인간의 언어에 맞추어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여기서 ‘겉 사람이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돌아섰다’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속 사람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통로입니다. 반면 겉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실제 삶으로 나타내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겉 사람이 own과 감각을 따라 독립하려 할 때, 주님께서 관계를 끊으시는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이 스스로 그 생명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돌아섬’(aversion)입니다.
따라서 ‘저주’도 하나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주는 주님께서 적극적으로 내리시는 형벌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마치 햇빛을 등지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어둠을 경험하는 것은 태양이 어둠을 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등졌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의 모든 저주를 이러한 원리로 이해합니다.
이 점에서 AC.269는 앞의 AC.267과 AC.268을 자연스럽게 이어 줍니다. AC.267에서는 rational이 own과 감각에 동의함으로써 겉 사람이 타락하였다고 설명하였고, AC.268에서는 그 결과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AC.269에서는 그 상태를 ‘저주’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저주는 주님의 행동이 아니라, 분리의 결과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45를 다시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AC.245에서 주님은 아무도 저주하지 않으시며, 악인은 스스로 악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AC.269는 그 원리를 다시 적용하여, 창3:17의 ‘땅이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말씀은 사람의 입장에서 표현되었지만, 실제 영적 원인은 언제나 사람 자신의 돌아섬에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흔히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셨다’거나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은 언제나 같은 사랑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흘려보내십니다. 변하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면 그 생명을 더욱 풍성히 받고, 스스로 등을 돌리면 그 생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변하지 않는 질서입니다.
결국 AC.269는 창3의 ‘저주’를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영적 인과관계로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겉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겉 사람이 own과 감각을 따라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 결과로 생명의 흐름이 막히고 영적 황폐가 찾아옵니다. 이것이 성경이 ‘저주’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창3의 심판 기사를 하나님의 진노의 기록이 아니라, 사랑이신 주님의 질서를 떠난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영적 결과에 대한 계시로 읽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AC.268, 창3:17, ‘땅’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8‘땅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