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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0, 창3:17,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bygracetistory 2026. 7. 13. 14:35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AC.270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eat of the ground in great sorrow)는 것이 비참한 삶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부터 분명하며, 더구나 먹는다는 것은 내적 의미, 곧 속뜻으로는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이러한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이 공격하기 시작하고, 함께 있는 천사들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애쓰게 될 때 뒤따른다는 사실로도 분명합니다. 이러한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이 점차 우세해지기 시작할 때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들은 겉 사람을 지배하게 되고, 천사들은 속 사람만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속 사람 안에는 이미 남아 있는 것이 너무 적어서, 천사들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그곳에서 거의 찾아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사람 안에는 비참함과 불안이 생겨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참함과 불안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참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짐승들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땅의 것만 바라보고, 세상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own만을 사랑하며, rational까지 완전히 동의한 가운데 자기 욕망과 감각을 마음껏 따릅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싸움이나 유혹을 거의 경험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유혹에 노출된다면, 그들의 생명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더욱 깊이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하고, 더욱 깊은 지옥의 정죄 속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상태를 이 세상에서는 겪지 않도록 허락하십니다. 대신 그들은 다른 삶, 곧 영계에 들어간 뒤에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유혹이나 고난 때문에 영적으로 죽을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상태가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으로 뜻하는 바입니다. That to “eat of the ground in great sorrow” signifies a miserable state of life is evident from what precedes and follows, not to mention that to “eat,” in the internal sense, is to live.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fact that such a state of life ensues when evil spirits begin to fight,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This state of life becomes more miserable when evil spirits begin to obtain the dominion; for they then govern the external man, and the angels only the internal man, of which so little remains that they can scarcely take anything thence with which to defend the man; hence arise misery and anxiety. Dead men are seldom sensible of such misery and anxiety, because they are no longer men, although they think themselves more truly so than others; for they know no more than the brutes of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and what is eternal life, and like them they look downward to earthly things, or outward to worldly ones; they favor only their own, and indulge their inclinations and senses with the entire concurrence of the rational. Being dead, they sustain no spiritual combat or temptation, and were they exposed to it their life would sink under its weight, and they could thereby curse themselves still more, and precipitate themselves still more deeply into infernal damnation: hence they are spared this until their entrance into the other life, where, being no longer in danger of dying in consequence of any temptation or misery, they endure most grievous sufferings, which likewise are here signified by the ground being cursed, and eating of it in great sorrow.

 

 

해설

 

이 글은 창3:17의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영적 차원에서 설명하면서, 유혹과 영적 죽음의 차이를 매우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먹는다’는 것이 말씀에서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산다’, 곧 어떤 상태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것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영적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이러한 비참함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떠날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악한 영들은 겉 사람을 더욱 강하게 지배하려 하고, 천사들은 속 사람을 통하여 사람을 보호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사람이 오랫동안 own과 감각만을 따라 살아오면, 속 사람 안에서 천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속 사람을 떠나시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이 그 생명의 흐름을 계속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리메인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암시합니다. 천사들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속 사람 안에 주님께서 보존해 두신 선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끊임없이 그것을 거부하면, 천사들이 작용할 수 있는 기반은 점점 약해집니다. 그래서 영적 싸움은 점점 더 힘겨워지고, 사람은 깊은 불안과 공허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스베덴보리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평안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영적 생명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병이 너무 깊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현명하다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나 천국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own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rational까지 동의한 가운데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창3에서 rationalown에 동의한 결과이며, 스베덴보리가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타락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깊은 유혹을 거의 겪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강한 영적 유혹을 받게 되면, 그것을 이겨 낼 리메인스와 영적 생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악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상태에 맞추어 유혹을 허락하시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유혹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섭리가 사후에도 계속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혹을 충분히 겪지 않았던 사람들은 영계에서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면서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통은 더 이상 거듭남을 위한 유혹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과 사랑의 결과를 온전히 마주하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창3:17의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의 더 깊은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AC.270은 영적 유혹과 영적 죽음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중요한 글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유혹을 통하여 괴로움을 겪지만, 그 유혹은 거듭남을 위한 주님의 역사입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그러한 유혹조차 거의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은 건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은 단순한 육체적 노동의 어려움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비참한 영적 삶과, 동시에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끝까지 보존하시려는 주님의 깊은 섭리를 함께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271, 창3:17, ‘네 평생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1‘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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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9, 창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9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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