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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 창3:19,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bygracetistory 2026. 7. 14. 16:44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AC.278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의 의미가 교회가 거듭나기 이전 상태와 같은 겉 사람(the external man)으로 되돌아감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ground)이 겉 사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합니다. 또한 (dust)의 의미가 정죄를 받음과 지옥이라는 사실도, 저주를 받은 결과 흙을 먹을지니라라고 한 뱀에 대하여 이미 설명한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거기서 보여준 의 의미에 덧붙여, 시편의 다음 말씀들도 있습니다. That 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is signified that the church would return to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before regeneration,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as previously stated. And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serpent, which in consequence of being cursed is said to “eat dust.” In addition to what was there shown as to the signification of “dust,” we may add the following passages from David: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w before Jehovah, and those whose soul he hath not made alive (Ps. 22: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Ps. 104:29),

 

이 말씀들은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숨이 끊어지고 죽게 되며, 그리하여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곧 정죄를 받아 지옥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which means that when men turn away from the face of the Lord, they expire or die, and thus “return to the dust,” that is, are condemned and become infernal.

 

 

해설

 

AC.278은 창3:19의 마지막 말씀인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마무리하는 대목입니다. 일반적인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육체적 죽음의 기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도 자연적 의미보다 영적 의미를 우선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가 흙으로 분해되는 현상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이 거듭남 이전의 외적 상태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는 ‘(dust)이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앞서 AC.255 이하에서 뱀이 ‘흙을 먹을지니라’ 한 것처럼, 흙은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 곧 주님과 분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흙 자체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은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 곧 정죄(condemnation)와 지옥 상태(infernal state)를 상징합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시편 두 구절을 인용합니다. 시22에서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가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와 나란히 언급됩니다. 이는 흙이 단순한 무덤의 흙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라는 걸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시104에서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라는 말씀도 단순한 육체적 죽음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호흡은 생명의 유입을 의미하며,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인간은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러한 상태를 주님의 적극적인 형벌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본문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라고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생명의 근원과 연결이 끊어지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생명의 유입을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얼굴은 내면의 현현을 뜻하기 때문에, 주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이고,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선다는 것은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단순한 죽음의 선언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결과를 묘사하는 영적 표현입니다.

 

AC.278은 창3의 심판 선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인간의 비극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돌아서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분리의 최종 결과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함으로써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와 지옥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주님 없이 자기 자신만으로 살고자 하는 인간 상태의 상징인 것입니다.

 

 

심화

 

1. ‘22: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w before Jehovah, and those whose soul he hath not made alive (Ps. 22:29).

 

 

AC.278에서 스베덴보리가 시22:29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dust)이 단순한 땅의 흙이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생명을 잃은 상태, 곧 정죄를 받아 지옥 상태가 된 걸 의미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9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를 설명하면서, 같은 의미로 사용된 다른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편은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를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와 나란히 언급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만일 ‘’이 단순히 육체의 무덤을 의미한다면 모든 사람이 결국 흙으로 돌아가므로 특별한 구별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가 특별히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흙은 단순한 물질적 상태가 아니라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다 그(Jehovah)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통치와 심판 아래 모든 사람이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주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자도 있고, 스스로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있습니다. 후자에 대해 ‘진토 속으로 내려간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그들이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에 머물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은 생명이 없는 것, 가장 낮은 것, 그리고 뱀이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창3에서 뱀이 ‘흙을 먹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따라서 흙은 자기 사랑과 감각적인 것만을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인간은 영적으로 ‘’의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흙으로 돌아간다’는 창세기의 말씀을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으로 이해합니다. 곧 사람이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만을 따라 살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생명을 잃고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라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이 시편 구절은 AC.278의 논지를 직접 뒷받침합니다. 즉 ‘’은 단순한 자연적 물질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생명을 잃은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창3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가 육체의 종말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 곧 정죄를 받아 지옥 상태가 된 걸 의미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시104: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Ps. 104:29),

 

 

AC.278에서 스베덴보리가 시편 104편 29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흙으로 돌아간다(return to their dust)’는 말이 단순한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돌아섬으로써 영적 생명을 잃고 정죄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 19절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를 해석하면서, 같은 상징이 사용된 시편의 말씀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께서 실제로 얼굴을 돌리신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주님의 얼굴은 그분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생명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께서 낯을 숨기신다’는 것은 사람 편에서 주님의 사랑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시지만, 사람이 주님에게서 돌아설 때 마치 주님께서 멀어지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어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호흡’은 단순한 공기의 숨결이 아니라 생명의 유입(influx)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살아 있는 것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생명을 흘려보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생명을 거부하고 자신만을 의지하게 되면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의 ‘죽음’을 육체의 죽음보다 영적 죽음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먼지(dust)’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앞서 창세기에서 뱀이 흙을 먹게 된 것처럼, 흙은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 곧 주님과 분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가 흙으로 분해된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에 갇혀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핵심 이유는 바로 본문 자체가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호흡을 거두신즉’, ‘죽어 먼지로 돌아간다’는 세 단계를 연결하여 말합니다. 즉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생명의 유입이 거절되며, 그 결과 영적 죽음과 ‘흙의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278에서 설명하는 ‘흙으로 돌아감’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의 ‘흙’이 물질적인 흙이 아니라 영적 상징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그는 생명의 근원과 분리되고, 결국 ‘먼지로 돌아간다.’ 곧 영적 생명을 잃고 정죄된 상태, 지옥적인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증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AC.277, 창3:19, ‘내적 의미, 곧 말씀의 속뜻’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7이것이 내적 의미, 곧 말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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