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 심화 4, ‘렘23:7’
AC.290.심화
4. ‘렘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렘23:7)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they shall no more say,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Jer. 23:7);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명이 오직 그분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여호와의 사심으로’라는 표현이 바로 영어 본문의 ‘Jehovah lives’, 곧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에 해당합니다.
렘23:7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렘16:14와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본문 모두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였으나, 장차 주님께서 더 크고 새로운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지 과거의 출애굽을 회상하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시대마다 자기 백성을 속박에서 건져 내시고,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표현은 단순히 여호와께서 존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십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는 고백은 모든 생명과 구원, 그리고 회복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만 짧게 인용하였지만, 그 의미는 이어지는 렘23:8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그들이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다시 그들의 땅에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는 흩어진 백성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내적 의미로는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졌던 사람을 다시 모아 선과 진리의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구원 역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살아 계신다’는 것은 정지된 속성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하고 회복시키시는 신적 활동과 연결됩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사람을 단지 존재하게 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깨우시며, 악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고, 선과 진리 안에서 다시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라는 사실은 이처럼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역사 속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출애굽과 포로에서의 귀환은 모두 거듭남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애굽 땅’은 사람이 자연적 지식과 외적인 것에 매여 있는 상태와 관련되고, 흩어졌던 여러 나라에서 돌아오는 것은 악과 거짓으로 분산되었던 생각과 애정이 주님의 질서 아래 다시 모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모든 회복을 이루시는 분이 ‘살아 계신 여호와’이시므로,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아납니다.
이 구절은 렘5:2와도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룹니다. 렘5:2에서는 사람들이 입으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짓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렘23:7-8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께서 실제로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참된 고백은 단지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생명 자체이신 주님의 구원을 받아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실 뿐 아니라,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진 사람을 다시 모으고 영적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교회 자체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계신 여호와, 곧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C.290, 심화 3, ‘렘16:14-15’
AC.290.심화 3. ‘렘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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