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 심화 32, ‘겔32:23-26’
AC.290.심화
32. ‘겔32:23-26’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24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26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겔32:23-26) whose graves are put in the flanks of the pit, and her assembly is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put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lam is there, and all her crowd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have gone down uncircumcised to the lower earth, who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and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y have put a bed for her in the midst of the slain with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slain by the sword, for their dismay was put in the land of the living, but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em that go down to the pit. He is put in the midst of the slain. Meshech is there, Tubal, and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pierced by the sword, for they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zek. 32:23-26).
겔32:23-26은 애굽과 여러 이방 민족의 멸망을 노래하는 심판 예언의 일부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전쟁이나 무덤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과 ‘구덩이’, 그리고 영적으로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가 무엇인지를 통하여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주제는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진리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매우 강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구덩이’, ‘무덤’, ‘칼에 죽임을 당한 자’,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단순히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와 천국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구덩이’와 ‘무덤’은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본문은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을 대조하여 보여 주는 예언입니다.
본문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도 문자적인 전사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칼’은 진리를 파괴하는 거짓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칼에 죽임을 당한 자’는 거짓을 받아들임으로써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살아 있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이며, 이것이 AC.290에서 말하는 ‘생명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또한 본문은 여러 민족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은 단순한 역사적 국가들만이 아니라, 말씀의 상응에 따라 교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서로 다른 종류의 거짓과 악을 대표합니다. 이들이 모두 ‘구덩이’와 ‘무덤’ 가운데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한 모든 상태의 최종적인 결과가 동일함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라는 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적 의미로는 이것은 거짓과 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참된 신앙과 체어리티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때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활동하였다고 해서 참된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고 왜곡한 결과, 결국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무덤’이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매장 장소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무덤이 영적으로는 생명 없는 상태, 곧 선과 진리가 전혀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무덤이 사방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사고와 의지, 삶 전체가 영적 죽음 가운데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인간 proprium의 최종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사26:14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하겠고’라고 선언하였다면, 에스겔은 그 죽은 상태가 어떠한 영적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더욱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호6:2와 시85:6에서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신 것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자가 되지만,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결국 무덤과 구덩이로 상징되는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3-26을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 심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의 본질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사람만이 참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이며,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영적으로는 ‘무덤’과 ‘구덩이’ 가운데 있는 자라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가장 엄숙하고도 강렬한 예언적 언어로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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