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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1, 심화 5, ‘가룟 유다’

bygracetistory 2026. 7. 23. 10:39

AC.301.심화

 

5. ‘가룟 유다

 

가룟 유다의 죄는 profanation으로 보아야 하나요?

 

 

스베덴보리의 profanation 개념에 비추어 보면, 가룟 유다의 죄는 단순한 배신을 넘어 profanation의 성격을 매우 강하게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만 ‘유다라는 개인의 영원한 내적 상태가 profanation의 최종 단계였다’고 우리가 단정하기보다는,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행위가 profanation을 대표적으로 드러낸다’고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고 안전합니다.

 

가룟 유다는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외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직접 부름받은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주님의 이적과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권능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룩한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범죄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가까운 자리에서 주님의 거룩하심을 접하고, 어느 정도 인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거룩한 관계를 이용하여 주님을 넘겨주었습니다. 특히 배신의 표로 ‘입맞춤’을 사용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입맞춤은 본래 사랑과 친교, 결합을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사랑의 표지를 배신의 신호로 바꾸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면서, 속으로는 주님을 원수들에게 넘겨주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표상과 악한 의도를 하나의 행위 안에 결합했다는 점에서, 이는 profanation의 구조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은 삼십을 받고 주님을 판 것은 단순히 스승 한 사람을 배신한 사건만이 아닙니다. 유다는 자신이 가까이에서 알고 따랐던 주님을 세속적 이익과 맞바꿨습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것을 탐욕 아래에 두고, 주님과의 관계를 돈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을 부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룩한 것을 악한 사랑에 종속시킨 일이므로 profanation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행위’가 profanation의 표본이라는 것과, 그의 내면 전체와 사후의 영원한 상태를 우리가 확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profanation은 단 한 번의 외적 행동만으로 기계적으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룩한 것을 얼마나 알고 인정했으며, 그것을 어떤 의도에서 악과 결합했는가 하는 내적 상태와 관련됩니다. 그 깊이는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유다가 뒤에 뉘우쳐 은 삼십을 돌려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신중히 보아야 합니다. 그의 후회가 참된 회개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와 공포를 견디지 못한 절망이었는지는 복음서의 기록만으로 완전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참된 회개는 악을 미워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지만, 절망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압도되어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지막 행동만으로 구원이나 멸망을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설교나 교인들과의 대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일반적인 세속적 배신과 다릅니다. 그는 주님을 가까이에서 알고 따랐으며, 사랑의 표인 입맞춤을 사용하여 주님을 팔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거룩한 것을 탐욕과 배신에 결합한 것으로서 profanation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유다 개인의 내면과 영원한 운명에 대한 최종 판단은 주님께 속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유다만을 정죄하는 데서 끝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다의 사건은 오늘날에도 사람이 주님의 이름과 말씀, 그리고 교회의 신뢰를 자기 명예, 재물,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 동일한 profanation의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가룟 유다의 죄가 두려운 까닭은 그가 멀리서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곁에 있으면서 그 거룩한 가까움을 악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이 AC.301의 경고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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