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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 심화 1, ‘출25:18-21’

bygracetistory 2026. 7. 28. 09:37

AC.308.심화

 

1. ‘25:18-21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5:18-21)

 

 

25:18-21 AC.308에 인용된 이유는, ‘그룹들’이 사람을 거룩한 것에서 영원히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한 것에 함부로 접근, 그것을 profane 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주님의 섭리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는 그룹들이 어디에 놓였으며, 무엇을 덮고 있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가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 모든 배치가 AC.308의 중심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먼저 그룹들은 증거궤 위의 ‘속죄소(on the mercy seat over the ark) 두 끝에 놓였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증거판, 곧 십계명이 들어 있었으므로, 증거궤는 말씀의 신적 진리와 더 깊게는 신적 진리이신 주님을 표상합니다. AC.308은 이 증거궤가 창3의 ‘생명나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밝힙니다. 곧 생명나무와 증거궤는 모두 주님과 오직 주님께 속한 천적인 것들, 다시 말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의 생명을 뜻합니다. 따라서 그룹들이 증거궤 위에 놓였다는 것은, 주님과 주님께 속한 가장 거룩한 것들이 주님의 섭리로 보호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룹들이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룹들은 속죄소와 별도로 만들어져 나중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속죄소 자체에서 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거룩한 것을 보호하시는 섭리가 주님의 자비와 분리된 별도의 조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속죄소(the mercy seat)는 주님의 자비와 죄 사함을 표상하고, 그룹들은 거룩한 것을 지키시는 섭리를 표상합니다. 그러므로 그룹들의 보호는 냉혹한 차단이나 배제가 아니라, 바로 주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보호입니다. 사람이 거룩한 것을 profane,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접근을 제한하시는 것 자체가 속죄소가 나타내는 주님의 자비에 속합니다.

 

또한 그룹들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고 있었습니다. 말씀에서 ‘날개’는 보호와 능력을 뜻하며, 여기서는 특별히 주님의 섭리가 거룩한 것을 덮어 지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덮음’은 거룩한 것을 완전히 없애거나 영원히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의 proprium과 감각, 그리고 기억 지식으로 거룩한 것 안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진리를 주시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상태와 질서에 따라 진리를 열어 주십니다.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깊은 진리가 감추어지는 것은 벌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그룹들의 얼굴이 서로를 향하면서 동시에 속죄소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도 같은 의미를 강화합니다. 그들의 시선은 바깥을 향하거나 사람을 위협하는 방향을 향하지 않고, 속죄소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룹들의 기능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정죄하는 데 있지 않고, 속죄소가 표상하는 주님의 자비와 거룩함을 섬기고 보호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룹들의 모든 자세와 방향은 주님의 자비를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룹은 단순한 심판의 표상이 아니라, 자비로운 섭리의 표상입니다.

 

속죄소가 증거궤 위에 놓이고, 증거판이 궤 안에 들어 있다는 구조도 중요합니다. 가장 안쪽에는 증거판이 있고, 그 위에는 속죄소가 있으며, 속죄소 위에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이는 신적 진리의 가장 내적 거룩함이 주님의 자비로 덮여 있고, 그 자비의 질서 안에서 섭리로 보호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곧바로 가장 내적인 신적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와 섭리를 통하여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지성과 감각으로는 증거판이 표상하는 신적 진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자비와 질서 안에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그룹들이 단순히 접근을 막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과 만나시고 말씀하시는 장소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다음 절인 출25:22에서 주님께서는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를 만나고 말씀하시겠다 하십니다. 따라서 그룹들이 있다는 것은 계시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시가 주님의 질서 안에서 보호되고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own으로부터 신앙의 아르카나를 침범해서는 안 되지만, 주님께서는 그룹들 사이에서, 곧 주님의 섭리가 정한 질서와 한계 안에서 사람이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AC.308이 특별히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유대교회의 상태와도 관련됩니다. 유대인들은 성막과 증거궤와 속죄소와 그룹들을 외적으로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주님과 천국, 그리고 말씀의 속뜻을 표상한다는 사실은 명백히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 내적 의미를 분명히 알면서도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위한 외적 예배를 계속하였다면, 그 거룩한 진리를 profane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상은 허락하셨으나 그 속뜻은 감추셨습니다. 속죄소 위의 그룹들은 바로 이러한 보호를 가시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창3:24의 그룹들과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창3에서는 그룹들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고 있고, 출25에서는 그룹들이 생명나무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증거궤와 속죄소를 덮어 지키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사람이 자신의 own으로부터 주님과 천적인 것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섭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켜지고’ 있듯이, 증거궤의 거룩함도 파괴되거나 제거된 것이 아니라 그룹들 아래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거룩한 것을 모독하지 않도록 보호하면서도, 장차 주님의 질서 안에서 다시 그것을 받을 가능성을 보존하시는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출25:18-21 AC.308에 인용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증거궤와 증거판은 주님과 주님께 속한 신적, 천적인 것들을, 속죄소는 주님의 자비를, 그 위에서 날개로 덮고 있는 그룹들은 사람이 자신의 proprium(own)과 감각, 그리고 기억 지식으로 그 거룩함을 침범하여 profane 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주님의 섭리를 표상합니다. 더욱이 그룹들이 속죄소와 한 덩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제한과 보호가 주님의 자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비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구절은 그룹이 단순한 금지와 차단의 표상이 아니라, 사람이 거룩한 것을 profane,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키시는 주님의 ‘보호하시는 자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AC.308에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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