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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8, 심화 8, ‘겔10:2, 7’

bygracetistory 2026. 7. 28. 14:53

AC.308.심화

 

8. ‘10:2, 7

 

2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7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10:2, 7) He sai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Go in between the wheel to beneath the cherub, and fill thy palms with coals of fire from between the cherubim, and scatter them over the city; the cherub put forth his hand from between the cherubim unto the fire which was between the cherubim, and took thereof, and put it into the palms of him that was clothed in linen, who took it and went out (Ezek. 10:2, 7).

 

 

10:2, 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단순히 거룩한 것을 지키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신적 섭리가 심판과 정결의 역사까지도 질서 있게 집행하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앞의 겔9가 보호와 구별의 질서를 보여준다면, 겔10은 그 보호가 끝난 후, 교회의 황폐함에 대한 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장면 역시 창3:24의 그룹과 동일한 영적 원리를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에 AC.308에서 함께 인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은 그룹 아래, 바퀴 사이에 있는 불을 손에 가득 담아 예루살렘 위에 흩뿌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어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에서 그것을 가져다가 세마포 입은 사람의 손에 건네줍니다. 말씀의 겉뜻만 보면 이것은 심판을 위한 불 전달 장면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속뜻으로는 주님의 거룩한 것이 이미 스스로를 거부한 교회에 더 이상 그대로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불은 단순한 파괴의 상징이 아니라,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최종적으로 분리하는 신적 작용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이 그룹들 사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심판 자체가 그룹의 본질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심판마저도 주님의 신적 섭리 아래 질서 있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앞선 출애굽기에서는 같은 그룹들 사이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렸고, 민수기에서는 같은 곳에서 모세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에서는 같은 거룩한 중심에서 심판을 위한 불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신성이 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교회의 상태가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언제나 동일한 신적 선과 신적 진리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상태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이 점은 창3:24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에덴동산의 그룹은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생명으로부터 영원히 배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겔10에서도 같은 원리가 나타납니다. 거룩한 것이 끝까지 profanation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시고, 이미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에서는 거룩한 것과 악한 것을 분리하심으로써 더 이상의 profanation을 막으십니다. 따라서 심판 역시 보호의 반대가 아니라 보호를 완성하는 신적 섭리의 한 작용입니다.

 

본문에서 그룹이 직접 손을 내밀어 불을 건네주는 장면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그룹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수행하는 신적 질서를 표상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심판과 모든 분리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서 질서 있게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가 그룹을 신적 섭리의 표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불은 말씀의 속뜻에서 언제나 사랑과 연결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불은 본래 신적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따뜻함이 되지만,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불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흩뿌려지는 불은 주님의 사랑 자체가 변하여 진노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을 거부한 교회의 상태가 그 사랑을 심판으로 경험하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 역시 신적 섭리의 질서입니다.

 

9와 겔10을 함께 살펴보면 AC.308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9장에서는 먼저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하여 보호하셨고, 10장에서는 그 보호가 이루어진 후 심판이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섭리는 언제나 보존이 먼저이고, 심판은 그다음입니다. 선한 것을 먼저 보호하신 후, 악을 분리하시는 것이 주님의 일관된 역사 방식입니다. 그룹은 바로 이 질서를 대표합니다.

 

10:2, 7 AC.308에서 인용한 이유는, 그룹이 단순히 생명나무나 언약궤를 지키는 존재를 넘어, 주님의 거룩한 것이 profanation 되지 않도록 끝까지 보호하시며, 필요할 때에는 심판과 분리까지도 질서 있게 집행하시는 신적 섭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 성막과 성전, 그리고 에스겔의 환상에 나타나는 그룹은 서로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장면 속에 등장하지만, 말씀의 속뜻에서는 모두 거룩한 것을 보존하시고 profanation을 막으시며, 마지막에는 선과 악을 질서 있게 분리하시는 주님의 자비롭고 완전한 섭리를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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