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11, 심화 2, ‘주님은 미리 아셨을 텐데...’
AC.311.심화
2. ‘주님은 미리 아셨을 텐데...’
바로 그 질문 때문에 스베덴보리의 섭리론이 더욱 깊어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예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처음부터 홍수 이후의 구조로 창조하실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태고교회를 만드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여러 저작을 종합해 보면, 주님께서는 인간을 ‘가장 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다. 태고교회의 의지와 이해가 하나였던 것은 ‘시험용 설계’가 아니라, 인간 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사랑과 지혜가 하나였고,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퍼셉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인간의 가장 높은 가능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동시에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사람들도 자기 사랑을 선택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예지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인간을 더 낮은 구조로 만드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지혜에 맞지 않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자라면서 넘어질 것도 알고, 실수할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이를 평생 유모차에만 태워 키우지는 않습니다. 걸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능력을 주고, 혹시 넘어질 경우를 대비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홍수 이후의 인간 구조는 그런 의미에서 ‘차선책’입니다. 결함이 있는 설계가 아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적 구조’입니다.
이 점에서 AC.311의 마지막 문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the Lord of His Divine mercy induced other states...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셨다(created)’ 하지 않고, ‘다른 상태들을 마련하셨다’(induced other states)고 말합니다.
‘induced’라는 동사는 이미 존재하는 인간 안에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시고 도입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새로운 회복의 질서’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오히려 주님의 섭리가 더욱 놀랍게 느껴집니다. 주님은 타락을 예지하셨지만, 그 때문에 처음부터 인간을 낮은 수준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인간이 실제로 그 자유를 잘못 사용했을 때, ‘그 자유 자체는 보존하면서도 구원의 가능성은 잃지 않도록’ 새로운 영적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섭리론 전체와도 연결됩니다. 주님은 미래를 예지하시지만, 그 예지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미리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유를 끝까지 존중하시면서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가능한 한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끄실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섭리의 길을 마련하십니다. 홍수 이후의 ‘other states’는 바로 그 신적 섭리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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