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12, 심화 1,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vs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
AC.312.심화
1.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vs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
혹시 ‘This expression,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applicable only to them, and could not be used in relation to those who lived afterwards, of whom it would have been said,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에 대한 좀 더 깊은 해설을 들을 수 있을까요? AC.312에서는 살짝 건드리고만 있지만 말입니다.
AC.312에서 스베덴보리가 ‘동쪽에서 에덴동산을 향하여’(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라는 표현은 오직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고, 후대 사람들에게는 ‘에덴동산에서 동쪽을 향하여’(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 두 표현이 단순히 공간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거듭남과 영적 생명이 진행되는 내적 순서를 서로 반대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속뜻으로 ‘동쪽’은 주님을,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특별히 천적 사랑과 천적 선을 뜻합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모든 생명과 사랑과 선이 주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편 ‘에덴’은 사랑과 그 기쁨을, ‘동산’은 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인텔리전스를 뜻합니다. 따라서 ‘동쪽’과 ‘에덴동산’은 서로 떨어진 두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에게서는 영적 질서가 ‘동쪽에서 동산을 향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먼저 의지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선이 있었고, 그 사랑으로부터 이해 안에 지혜와 퍼셉션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어떤 진리가 참된지를 먼저 배우고 논증한 다음 그것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선에 속한 진리를 곧바로 지각하였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사랑이 근원이었고, 지혜는 그 사랑에서 자라나는 동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래 질서는 ‘동쪽에서 에덴동산을 향하여’, 곧 천적 선으로부터 지혜와 인텔리전스를 향하는 방향으로 표현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타락하였을 때에도 그들의 내적 구조 자체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출발점인 의지가 완전히 부패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원래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사랑이 의지를 채우고, 그 사랑으로부터 이해와 퍼셉션이 나왔지만, 타락 후에는 자기 사랑과 악한 욕망이 의지를 점령하였고, 그 악한 의지로부터 거짓된 사고와 persuasion이 이해 안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선으로부터 진리가 나와야 할 통로가 악으로부터 거짓이 나오는 통로로 전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적 선으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이면서도, 여전히 그 본래 질서와 관련하여 ‘동쪽에서 동산을 향하여’라는 말로 묘사됩니다.
홍수 이후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홍수 이후 사람들에게서는 의지와 이해가 분리되었고, 유전적으로 부패한 의지에서 곧바로 영적 생명이 시작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거듭남의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사람은 먼저 이해를 통하여 신앙의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알고 인정하며, 양심에 따라 실천함으로써 점차 새로운 의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즉 후대의 영적 인간은 동산으로 표상되는 이해와 인텔리전스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표상되는 사랑과 선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후대 사람들의 질서를 표현한다면 ‘에덴동산에서 동쪽을 향하여’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방향의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으로부터 지혜가 나왔으므로 ‘동쪽에서 동산을 향하여’였습니다. 홍수 이후 교회에서는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서 시작, 사랑과 선으로 나아가므로 ‘동산에서 동쪽을 향하여’입니다. 전자는 의지에서 이해로, 사랑에서 신앙으로, 선에서 진리로 진행되는 천적 질서입니다. 후자는 이해에서 새로운 의지로, 신앙에서 체어리티로, 진리에서 선으로 나아가는 영적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이 전치사의 방향을 그토록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단어 하나의 차이에 두 종류의 인간과 두 시대의 교회가 가진 내적 구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동쪽에서 에덴동산을 향하여’라는 표현은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 단순히 과거에 천적 선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명 전체가 본래 사랑으로부터 지혜가 흘러나오는 구조였으며, 바로 그 구조가 타락 후에는 자기 사랑으로부터 광기 어린 persuasion이 흘러나오는 구조로 전락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룹들을 동쪽에서 에덴동산을 향하여 두셨다’는 것은 그들이 다시 천적 선과 퍼셉션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통로가 보호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영원히 폐쇄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악한 의지와 거짓된 persuasion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거룩한 것에 접근하여 모독(profanation)하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천적 질서의 기억과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 사랑과 거짓에 결합하는 일이었습니다.
AC.312의 이 짧은 문장은 결국 AC.311에서 설명한 홍수 전후 인간 구조의 차이를 문법적 방향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수 이전의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진리로’ 살았고, 홍수 이후의 영적 인간은 ‘진리에서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앞 시대에는 ‘동쪽에서 동산을 향하여’가 맞고, 후대에는 ‘동산에서 동쪽을 향하여’가 맞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전치사의 순서가 바뀐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씀의 속뜻으로는 인류의 내적 구조와 구원의 질서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AC.312, 심화 2,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vs ‘the sword of a flame turning itself’
AC.312.심화 2.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vs ‘the sword of a flame turning itself’ AC.312에서 스베덴보리는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 사용된 표현이 ‘두루 도는 칼의 화염’(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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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12, 창3:24, ‘창3 마지막 절의 표현 하나하나’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2 이 구절에서는 홍수 이전 사람들의 상태가 충분히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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