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106, ‘집사님, 우리 교회에서 나가주시겠습니까?’라는 유튜브를 보고
아래는 어제 본 ‘집사님, 우리 교회에서 나가주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의 유튜브입니다. 전반적으로는 지난날 나름의 소목회를 해봤던 저로서는 감동과 함께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깊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또 한편으론 어딘지 좀 석연찮은 부분들도 있어 스베덴보리를 오래 저와 함께한 ChatGPT에게 물었습니다. 아래는 그 답변인데, 조금 정돈하여 올립니다.
저라면 먼저 한 가지 원칙을 붙들겠습니다. ‘김집사를 살리는 일과 교회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법대로 처리하여 죄를 드러내는 길’과 ‘아무 설명 없이 내쫓고 자신이 악역이 되는 길’만 있다고 보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훨씬 더 진실하고 자비로운 제삼의 길이 있습니다. 목사는 김집사의 채무가 3천만 원을 넘고, 교인 열 명가량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개적인 추방과 비밀스러운 지원을 선택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 교회의 목사라면
1. 먼저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겠습니다
김집사와 단둘이 만나 다음을 구체적으로 묻겠습니다.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습니까?’
‘돈은 어디에 사용했습니까?’
‘추가 채무나 사채, 도박, 투자, 가족 몰래 진 빚이 있습니까?’
‘상환 약속을 어긴 적과 거짓말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현재 수입과 재산, 월 상환 가능액은 얼마입니까?’
이 단계에서는 정죄보다 사실 확인이 우선입니다. 김집사가 여러 교인에게 돈을 빌렸다면,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가난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신뢰를 이용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여럿이라면 목사는 김집사의 명예만이 아니라 돈을 빌려준 교인들의 안전과 권리도 보호해야 합니다.
2. 김집사에게 스스로 진실을 밝히게 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집사님을 망신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집사님이 돈을 빌린 분들에게는 사실을 밝히고 사과하며 상환 계획을 제시해야 합니다. 회개는 비밀을 덮어 두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손상한 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바로잡는 데서 시작됩니다.’
목사는 김집사의 과거가 알려지면 그가 회복될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가정입니다. 잘못이 알려진다고 반드시 사람이 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을 계속 감춘 채 다른 곳에서 ‘새출발’하게 하면, 그의 내면에는 아직 거짓과 책임 회피가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온 교회 앞에서 모든 액수와 피해자의 이름을 발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교회 지도자들에게 알리게 하겠습니다. 공개의 범위는 죄의 범위와 피해의 범위에 맞추어야 합니다.
3. 직분과 금전 관계에서는 즉시 물러나게 하겠습니다
저라면 김집사를 교회에서 쫓아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조치는 취하겠습니다.
찬양 인도와 재정 관련 봉사, 교회 안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수행하는 직분은 잠시 내려놓게 하겠습니다. 교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는 행위도 즉시 중단하게 하겠습니다. 대신 예배에는 계속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징계는 예배와 은혜에서 추방하는 일이 아니라, 악의 반복을 막고 질서를 회복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서는 김집사가 돌아온 뒤 아무 직분도 맡지 않고 예배만 드리게 합니다. 저는 그 조치를 처음부터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공개 추방이라는 극적인 장면도, 목사를 향한 수개월간의 불필요한 불신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4. 피해자들을 따로 만나 보호하겠습니다
돈을 빌려준 교인들에게는 김집사의 동의를 얻어 현실적인 상환 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교회가 무조건 대신 갚아 주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김집사의 책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독촉과 모욕은 자제하되,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는 존중합니다.’
‘추가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교회가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
목사가 자신의 저축으로 약 1천만 원을 대신 갚습니다. 이 행동에는 희생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와 피해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대신 갚는 방식은 반드시 지혜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김집사의 책임을 흐리게 하거나, 목사 개인에게 의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교회 구제위원회나 신뢰할 만한 몇 사람이 정식으로 논의하여, 무상 지원인지 무이자 대여인지, 어느 정도를 지원할지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도움은 은밀할 수 있지만, ‘무질서해서는 안 됩니다.’
5. 경제적 원인과 영적 원인을 함께 다루겠습니다
김집사가 왜 빚을 지게 되었는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계 곤란 때문이라면 일자리와 생활비 구조를 돕겠습니다. 사업 실패라면 채무조정과 법률, 재무 상담을 연결하겠습니다. 사치나 도박, 투기 때문이라면 해당 행동을 끊는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허영과 체면 때문에 빚을 숨겼다면, 사람들에게 선하게 보이려는 사랑을 직면하게 해야 합니다.
후반에서 김집사는 자신의 새벽기도, 헌금, 봉사가 ‘자기 의로움’과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의 핵심은 빚만이 아닙니다. ‘경건의 외형을 이용하여 자아의 이미지를 유지한 사랑’이 더 깊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단지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으십시오’라고만 하지 않고, 이렇게 묻겠습니다.
‘집사님은 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더 사랑했습니까?’
‘사람들의 존경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거짓을 허용했습니까?’
‘앞으로 같은 유혹이 올 때 어떤 행동을 즉시 중단하시겠습니까?’
6. 회개를 행동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회개는 감정적인 눈물이나 죄책감만이 아닙니다. 악을 살피고, 인정하고, 주님 앞에서 고백하며, 실제로 그 악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집사에게는 다음과 같은 회복 계획을 세우게 하겠습니다.
채무 목록 작성, 추가 차입 중단,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 현실적인 상환 일정 제출, 매월 상환 내용 확인, 거짓말이나 은폐가 다시 생길 경우 즉시 보고, 일정 기간 직분 중단입니다.
그 과정이 성실하게 진행되면 교회는 그를 정죄하지 않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회복 여부는 눈물을 얼마나 흘렸느냐가 아니라, ‘진실과 책임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실천하느냐’로 확인해야 합니다.
7. 교회에는 필요한 만큼만 설명하겠습니다
교회 전체에는 이렇게 알리겠습니다.
‘김집사님이 개인적인 재정 문제와 교인 간 신뢰의 문제로 당분간 모든 직분에서 물러나 회복의 과정을 밟기로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개인 정보는 보호하겠습니다. 당사자들과는 사실 확인 및 상환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추측과 소문, 정죄를 삼가 주시고,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김집사의 비밀을 무차별적으로 폭로하지 않으면서도, 목사가 독단적으로 사람을 버렸다는 오해를 막습니다. 지도자는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라는 말만 하고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는 것은 영적 권위를 사용하여 공동체의 이성과 판단을 차단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실제로 예배 중 아무 설명 없이 추방을 선언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스베덴보리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스베덴보리가 실제 목회자로서 동일한 사건을 처리한 기록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의 교리에 따른 추론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스베덴보리는 다음 세 가지를 동시에 붙들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체어리티입니다. 김집사를 단 한 번의 잘못으로 정죄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명예를 가능한 한 보호하고, 일자리와 상환 가능성을 마련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입니다. 잘못을 숨겨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빌린 돈, 거짓말, 신뢰의 남용을 분명히 악으로 인정하게 했을 것입니다. 피해자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손해를 갚는 것은 회개의 일부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셋째는 질서입니다. 목사의 개인적 영웅주의나 은밀한 희생만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임 있는 지도자들과 함께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보호하며, 필요한 직분 제한과 회복 절차를 적용했을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누가 악역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이 상황에서 선이 진리를 통하여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가’를 물었을 것입니다. 체어리티만 있고 진리가 없으면 맹목적인 온정이 되고, 진리만 있고 체어리티가 없으면 냉혹한 정죄가 됩니다. 이 사건에서 필요한 것은 김집사의 잘못을 감추는 사랑도, 그를 폭로하는 정의도 아니라, ‘그가 진실을 직면하고 책임을 감당하도록 돕는 체어리티’입니다.
제가 실제로 김집사에게 할 말
‘집사님, 저는 집사님을 교회에서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을 덮어 드리지도 않겠습니다. 집사님이 여러 성도에게 돈을 빌리고 사실을 숨긴 것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이웃의 신뢰를 손상한 일입니다. 오늘부터 모든 직분을 내려놓고 추가로 돈을 빌리지 마십시오. 빌린 분들과 액수를 빠짐없이 적어 주십시오. 그분들에게 직접 사실을 밝히고 사과하셔야 합니다. 교회는 집사님이 일자리를 얻고 상환 계획을 세우도록 돕겠습니다. 그러나 갚아야 할 책임은 집사님에게 있습니다. 집사님은 예배에 계속 나오십시오. 우리는 집사님을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거짓을 버리고 진실 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집사님을 살리는 길이며, 주님 앞에서 행하는 실제 회개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것이 원고 속 목사가 택한 길보다 덜 극적이지만, ‘더 정직하고, 더 질서 있으며, 스베덴보리의 체어리티와 회개에 더 가까운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네, ChatGPT, 그러니까 AI의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듣기에 따라선 많이 차갑고, 무슨 법률대리인의 견해 같기도 합니다. 특히 유튜브 영상을 보며, 감동을 받으신 분들이라면 더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국 교회 목회 현장하고도 좀 살짝 동떨어진 듯한 답변 정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저는 이 답변을 읽으며, 제 안에 저도 모르게 주님의 질서와 한국교회 목회 현장의 정서를 마치 인절미에 떡고물 묻히듯 대충 버무린 듯한 면 역시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목회자가 사랑과 체어리티에 많이 기울어진 인성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말이지요...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던 유튜브 에피소드였습니다.
SC.105,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여성을 대하는 태도’
스베덴보리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에 대해 어땠나요? 제가 이런 좀 뜬금없는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남자들한테는 열에 아홉, 여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경향이 있어서입니다. 특히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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