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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16, 심화 1, ‘주님이 신생 영에게 일련의 코스를 밟게 하시는 이유’

bygracetistory 2026. 7. 30. 17:28

AC.316.심화

 

1. ‘주님이 신생 영에게 일련의 코스를 밟게 하시는 이유

 

사람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시는 주님은 왜 사후 처음 눈 뜨는 영에게 이후 진행될 전체 코스를 설명, 너는 이 코스를 다 돌래, 아니면 바로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래 묻고, 그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지 않으시나요?

 

 

AC.314에서 AC.316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자유를 그토록 존중하신다면, 왜 사후 처음 눈을 뜬 영혼에게 앞으로의 과정을 모두 설명하시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칠 수도 있고, 원한다면 지금 바로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묻지 않으실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것이 가장 자유로운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스베덴보리에게 ‘선택’이란 단순히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머리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천국과 지옥은 두 장소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랑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만일 처음부터 ‘천국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이고, 지옥은 고통의 나라입니다. 어느 곳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천국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반드시 그 사람의 진정한 선택은 아닙니다. 행복은 원하지만, 천국의 삶 자체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의 저서, ‘천국과 지옥’에서 많은 영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여 올라갔지만, 막상 천국의 분위기 속에서는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내려오는 모습을 여러 차례 설명합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분위기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그들은 천사들이 내보내서가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떠납니다. 이것이 바로 AC.315 AC.316에서 천사들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천사들에게서 멀어진다고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사후의 여정은 주님께서 사람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셔서 생기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 사람 스스로 분명히 알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영적 천사들과 함께 지내고, 이어 선한 영들과도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공동체를 경험하지만, 자신의 내적 사랑과 맞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삶과 같은 사랑을 가진 공동체를 만나면 비로소 깊은 평안과 친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마치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한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체면과 사회적 역할, 법과 관습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어느 정도 감추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그러한 외적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고,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 선택되는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니라, 평생 조금씩 선택해 온 삶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드러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 결과 사람은 어느 순간 ‘내가 진정 편안한 곳은 바로 여기였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유입니다. 자유란 여러 선택지를 설명받은 뒤 하나를 결정하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받는 상태입니다.

 

AC.314에서 AC.316까지의 흐름은 사람을 심판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까지 정직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천국이나 지옥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시고, 여러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시며,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르러 각 사람은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사랑을 따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자비와 인간의 자유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스베덴보리의 사후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316, 창3 뒤, ‘사람이 사후 자신의 영원한 거처에 이르게 되는 과정’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6 영혼이 이처럼 그 천사들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면, 그는 선한 영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온갖 친절한 도움을 받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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