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20, 창4 앞,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AC.320-323)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On The Nature Of The Life Of The Soul Or Spirit
AC.320
영혼(soul)으로서의 삶, 곧 죽은 뒤 처음 영계에 들어가는 신참, 신생 영들(novitiate spirits)의 삶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저는 많은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저세상(the other life)에 들어가면 그는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 있으며, 심지어 아직도 육체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매우 실제적이어서, 누군가 그에게 자신이 영이라고 말해 주면 그는 크게 놀라고 경이로워합니다. 이는 자신이 감각과 욕구, 생각에 있어서 전과 똑같이 한 인간으로 존재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 살 때에는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거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영이 지금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With regard to the general subject of the life of souls, that is, of novitiate spirits, after death, I may state that much experience has shown that when a man comes into the other life he is not aware that he is in that life, but supposes that he is still in this world, and even that he is still in the body. So much is this the case that when told he is a spirit, wonder and amazement possess him, both because he finds himself exactly like a man, in his senses, desires, and thoughts, and because during his life in this world he had not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or, as is the case with some, that the spirit could be what he now finds it to be.
해설
AC.320부터 AC.323까지는 창세기 4장의 속뜻으로 들어가기 전에 삽입된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라는 짧은 연속 기사입니다. 앞의 AC.314-319에서 사람이 영생에 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여러 경험을 소개했다면, 여기서는 사람이 육체의 죽음 이후 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좀 더 일반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AC.320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자기 존재가 단절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저세상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자신이 저세상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 있으며 심지어 육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 지상의 의식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낯선 존재 상태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나’라는 분명한 자각 가운데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죽은 뒤에도 ‘감각과 욕구, 생각’에 있어서 자신이 이전과 똑같이 한 인간임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 무엇인가를 원하고 사랑하며, 주변의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놀라게 됩니다. 지상에서는 영을 육체를 잃은 희미한 존재처럼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이 되고 보니 자신이 여전히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죽음으로 없어지는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입고 있던 육체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애정, 곧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내적인 생명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에게 죽음은 ‘존재하던 사람이 없어지고 전혀 다른 존재가 생기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계의 육체를 벗고도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음을 발견하는 사건입니다.
특히 AC.320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영’에 대한 막연한 관념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은 영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나 의식만 남은 어떤 것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증언하는 영은 그렇게 막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 자신이 ‘나는 전과 똑같은 사람인데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만큼 자기 존재와 감각과 사고의 연속성을 경험합니다. 이어지는 AC.321-323에서는 이 점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므로 AC.320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죽으면 내가 없어지는가?’가 아니라 ‘육체를 벗은 뒤에도 계속 살아가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생각하고 원하고 사랑하는 내가 계속된다면, 지금 무엇을 사랑하며 어떤 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AC.320 자체의 초점은 아직 사후의 심판이나 천국과 지옥의 결정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먼저 확실하게 말하려는 것은 훨씬 기본적인 사실입니다. 육체의 죽음으로 인간의 의식과 인격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AC.320은 이후 이어질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 설명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과 같습니다.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은 희미하고 추상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여전히 보고 느끼고 원하고 생각하는 ‘나’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소멸이 아니라, 사람이 육체를 벗은 뒤에도 자신의 생명이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계입니다.
심화
1. ‘soul’과 ‘spirit’
AC.320, 심화 1, ‘soul’과 ‘spirit’
AC.320.심화 1. ‘soul’과 ‘spirit’ ‘soul’과 ‘spirit’의 차이가 뭔가요? 그리고 적절한 우리말 번역은? AC.320에는 흥미롭게도 ‘soul’과 ‘spirit’이라는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
bygrace.kr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AC.320, 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AC.320.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임종, 그러니까 지상에서 숨을 거두는, 정말 수없이 다양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평안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
bygrace.kr
AC.321, 창4 앞, 육체를 벗은 뒤 감각과 사고와 말의 능력은 더욱 뛰어납니다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AC.321두 번째 일반적인 사실은 영이 육체 안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감각 기능을 누리며,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 또한 훨씬 더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bygrace.kr
AC.319, 창3 뒤, ‘두 번째 사례’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9 나는 또 다른 한 사람도 보았는데, 그는 천사들에 의해 곧바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주님께 받아들여졌고, 천국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