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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0, 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bygracetistory 2026. 8. 1. 09:19

AC.320.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임종, 그러니까 지상에서 숨을 거두는, 정말 수없이 다양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평안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쓸쓸히 홀로 고독사하는 사람도 있고...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편안하게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통사고 등 갑작스런 사고사나 전쟁이나 강도, 감옥 형장의 이슬, 혹은 자살 등... 제가 말씀드리고픈 것은 저는 고등학생 때 모친을 교통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이런 사별의 경험은 정말 선 굵은 인생의 자국을 남기더라는 거죠. 아마 숨을 거두시는 분도 그러지 싶은데... 그런데 어떻게 사후 자기가 죽은지조차 모를 수가 있는 건가요? 모든 게 이어진다면서 말이죠...

 

 

겉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한편으로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의식은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두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의식의 연속’과 ‘상황에 대한 인식’입니다. 사람은 죽는 순간 자신의 기억과 생각, 감정과 사랑, 성격과 삶의 방향을 그대로 지닌 채 영계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죽었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상에서도 깊이 잠들었다가 막 깨어났을 때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식은 계속 이어졌지만,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죽음 직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죽음을 인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이 되도록 섭리하십니다. 만일 사람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특히 교통사고나 전쟁, 살해, 갑작스러운 사고와 같은 경우에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충격이 영혼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사람은 여전히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연속된 의식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인도와 새로운 환경을 통해 조금씩 자신이 영계에 들어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점은 지상에서의 죽음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숨을 거두고, 어떤 사람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을 마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나 재난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전쟁이나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극심한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죽음의 방식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됩니다. 갑작스러운 사별은 삶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 놓을 만큼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증언은 지상에서 바라본 죽음과 영계에서 경험하는 죽음이 반드시 같은 모습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상에서는 사고의 순간이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되지만, 영계에서는 그 한순간의 충격이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상태에 맞게 천사들을 보내시고, 마치 깊이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옮기듯 그 영혼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사고의 충격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 안에서 주님의 보호를 받으며 점차 영계의 삶에 적응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AC.320은 ‘사람은 자신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으며, 심지어 아직도 육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로 인해 죽음이 파괴적인 단절로 경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나는 끝났다’는 의식보다 ‘나는 계속 살아 있다’는 의식을 먼저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연속된 삶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영계에 들어왔음을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AC.320은 단순히 사후 세계의 한 현상을 설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역사하시는 주님의 자비를 보여 주는 글입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가장 큰 변화처럼 보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변화가 영혼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되지 않도록 섭리하십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손 안에서 이 세상의 삶에서 저세상의 삶으로 조용히 옮겨지며, 그 연속성 속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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