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6/08/02, 창3:23-24, AC.305-313, 성찬), ‘그룹들, 두루 도는 불 칼,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심’
※ 오늘(2026/08/02)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41, ‘내 영혼아 주 찬양하여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성찬), 찬87,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입니다.
오늘은 창3 아홉 번째, 본문은 창3:23-24이고, AC 글 번호로는 305번에서 313번입니다. 오늘로 창3 본문을 마치며, 다음 주는 AC 창3 뒤와 창4 앞, 그러니까 ‘사후 사람이 영생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사후 사람이 영혼, 즉 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내용을 연결하여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설교 후 성찬 있습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본문은 지난주처럼 창3 세 번째 파트 전체를 읽겠습니다.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0-24)
제목은
그룹들, 두루 도는 불 칼,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심
이며, 다음은 오늘 범위인 AC.305-313의 요약입니다.
AC.305 (23절) 요약
창3:23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던 지성과 지혜의 상태를 잃고, 새로운 영적 질서 아래 살아가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는 단순히 장소에서 추방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되는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더 이상 직접 누리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동산’은 진리를 이해하는 지성을, ‘에덴’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사랑과 지혜가 함께 무너지고, 천적 생명의 상태를 상실하였음을 뜻합니다. 사람은 여전히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자연적 인간의 상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는 거듭나기 이전의 자연적 인간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마련하신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사람은 퍼셉션은 잃었지만, 말씀을 배우고, 양심을 형성하며, 신앙과 체어리티를 통해 점진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에덴에서의 추방은 생명을 빼앗으신 사건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위한 새로운 구원의 시작을 마련하신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AC.306-313 (24절) 요약
창3:24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는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더 깊은 영적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단순히 어떤 장소에서 추방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더 이상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선과 진리를 지각(perception)하는 상태에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상태에 맞는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에덴동산 동쪽’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의 근원을 의미하며, 그곳에 두신 ‘그룹들’은 사람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의 가장 깊은 아르카나를 함부로 접하여 모독(profanation)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룹은 생명의 길을 막는 존재가 아니라, 장차 사람이 다시 생명에 이를 수 있도록 그 길을 거룩하게 보존하는 존재입니다. 이어지는 ‘두루 도는 불 칼’은 자기 사랑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광적 욕망(insane desires), 그리고 진리를 왜곡,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persuasions을 뜻합니다. 사람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생명나무에 이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이 주님의 보호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의미가 창세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성막과 성전의 그룹들, 언약궤 위의 그룹들, 에스겔의 환상에 나타나는 그룹들은 모두 같은 원리를 나타냅니다. 곧 주님께서는 사람의 영적 상태에 따라 계시를 열어 주시기도 하고 감추시기도 하시며, 거룩한 것이 profanation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보호하십니다. 따라서 계시를 제한하시는 것 역시 심판이 아니라 자비의 한 형태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진리를 허락하시며, 그 이상의 빛이 오히려 사람을 더 깊은 파멸로 이끌게 될 때에는 사랑으로 그것을 감추십니다.
이러한 보호의 필요성은 특히 홍수 이전 태고교회의 마지막 사람들에게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랑에서 진리를 직접 지각하는 천적 인간이었지만, 자기 사랑이 의지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서 이해마저 거짓을 진리로 확신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선과 진리를 모두 자기 사랑을 위하여 이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광적인 persuasions 속에서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영적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이 더 깊은 거룩한 것까지 profane 하지 않도록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셨으며, 이것이 바로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의 영적 의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심판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는 끝났지만, 주님께서는 홍수 이후 인류를 위하여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에서 신앙으로 나아가는 천적 인간이었지만,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말씀의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함으로써 양심을 형성하고,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에 이르는 영적 인간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비록 퍼셉션은 잃었지만, 거듭남의 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아담’을 최초의 한 개인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아담’은 태고교회 자체를,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참된 인간이 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창3은 한 개인의 범죄와 추방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의 형성과 타락,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생명나무의 길은 닫힌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언젠가 다시 인간을 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지키고 보존하시는 소망의 길인 것입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305,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창3:23) AC.305 ‘에덴동산에서
bygrace.kr
AC.306,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
bygrace.kr
AC.307, 창3:24, ‘여섯째와 일곱째 후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7 여기서는 홍수로 멸망한 여섯째와 일곱째 후손에 대하
bygrace.kr
AC.308, 창3:24, ‘그룹들’(cherubim)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8 앞에서 ‘동쪽’(east)과 ‘에덴동산’(garden of Eden)의
bygrace.kr
AC.309, 창3:24, ‘두루 도는 불 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9 ‘두루 도는 불 칼’(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의 의미
bygrace.kr
AC.310, 창3:24, ‘홍수 이전 사람들과 홍수 이후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0 이 절에 나오는 각각의 표현에는 매우 깊은 아르카나
bygrace.kr
AC.311, 창3:24, ‘홍수로 멸망한 사람들의 내세에서의 상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1 홍수로 멸망한 사람들의 내세에서의 상태는 이와 같습
bygrace.kr
AC.312, 창3:24, ‘창3 마지막 절의 표현 하나하나’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2 이 구절에서는 홍수 이전 사람들의 상태가 충분히 묘
bygrace.kr
AC.313, 창3:24, ‘유전악’(hereditary evil)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3 여기서 첫 사람에 관하여 말한 것으로부터, 오늘날 존
bygrace.kr
오늘 AC 리딩 본문 전체는 여기까지이고, 이 가운데 필수 리딩 목록은 리딩 순서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AC.306,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
bygrace.kr
AC.308, 창3:24, ‘그룹들’(cherubim)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8 앞에서 ‘동쪽’(east)과 ‘에덴동산’(garden of Eden)의
bygrace.kr
AC.313, 창3:24, ‘유전악’(hereditary evil)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3 여기서 첫 사람에 관하여 말한 것으로부터, 오늘날 존
bygrace.kr
AC.311, 창3:24, ‘홍수로 멸망한 사람들의 내세에서의 상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11 홍수로 멸망한 사람들의 내세에서의 상태는 이와 같습
bygrace.kr
이어서 성찬 있습니다.
잠깐 광고 하나 드리면, 지난 2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창3, AC.182-319 번역, 해설 및 심화 – ChatGPT’를 어제 마쳤습니다. 블로그에 pdf 버전으로 올려놓았으니 자유롭게 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주님이 빛을 비추셔서 이 내용들이 깨달아지고, 영혼에 큰 유익과 기쁨들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창3, AC.182-319 번역, 해설 및 심화 - ChatGPT.pdf 소개
창3, AC.182-319 번역, 해설 및 심화 - ChatGPT.pdf 소개 ‘창3, AC.182-319 번역, 해설 및 심화 - ChatGPT.pdf’는 흔히 ‘인간의 타락’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장을, 단순한 최초 인간의 범죄 기록이나 불순종
bygrace.kr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8-02(D1)
주일예배(2026/07/26, 창3:20-22, AC.280-304), ‘하와, 가죽옷, 영생할까 하노라’
※ 오늘(2026/07/26)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40,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찬86,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3 여덟 번째, 본문은 창3:20-22이고, AC 글 번호로는 280번에서 304번입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