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29, ‘삼위일체, 잘못돼서 어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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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는 처음부터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미 어떤 ‘안경’을 쓰고 있으며, 그 안경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강연자는 자신이 성경 자체를 다시 읽은 결과, 전통적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이 아니라 후대의 신학이 만들어 낸 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흥미롭게도 ‘교리라는 안경이 성경 이해를 좌우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스베덴보리 역시 매우 강하게 제기했던 부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저서,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과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곳곳에서, 사람들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형성된 교리와 자기 이해를 통해 말씀을 읽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언제나 사람의 애정과 사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말씀의 속뜻을 새롭게 열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안경’이라는 비유 자체는 상당히 의미 있는 문제 제기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는 기존 교리를 부정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내적 일관성 속에서 모든 교리를 다시 재정립하려 했다는 점이 이 강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입니다.
강연자는 이어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지만 한 하나님은 아니다’라고 단정합니다. 즉 두 하나님이며 두 인격인데, 다만 목적과 뜻이 같기 때문에 ‘하나’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은 강연자와 일정 부분 겹치면서도 결정적으로 갈라집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전통적인 ‘세 인격이면서 한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제로는 세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심어 준다고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상이 교회의 가장 큰 혼란 중 하나가 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베덴보리가 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보이지 않는 신성인 아버지와, 나타난 신적 인성, 그리고 발출, 즉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시는 신성이 하나로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에게 영혼과 몸, 그리고 활동이 분리될 수 없듯이, 주님 안에서도 신성과 인성, 그리고 활동, 즉 흘러나오시는 신성은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반대한 것은 ‘삼위’ 자체가 아니라 ‘세 하나님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삼위의 이해’였습니다. 그는 삼위를 ‘한 인격 안의 삼위’로 재해석합니다. 이 점에서 강연은 전통 교리를 비판하는 데까지는 스베덴보리와 일부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그 대안으로 두 하나님을 세우는 순간 스베덴보리의 중심 교리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강연은 예수님의 순종을 중요한 논거로 사용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들어, 뜻이 둘이므로 두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마리아에게서 받은 인간성, 그러니까 인성을 입으셨으며, 그 인성 안에는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시험과 유혹을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상태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겟세마네에서 나타난 두 뜻은 두 하나님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영화되지 않은 인성과 그 안에 내재한 신성 사이에서 일어난 마지막 시험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외부의 다른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성을 끝까지 신성에 복종시키심으로써 인성을 완전히 신성하게, 즉 ‘Divine Human’으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화’(Glorification)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두 신격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신성으로 변화시키는 구속 과정의 일부입니다.
강연은 또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하셨으며, 태초에 아버지 안에서 혼으로 계시다가 몸을 입고 나오셨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독창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지만, 스베덴보리의 설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원부터 존재하신 것은 ‘신적 진리’ 곧 말씀(Logos)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분리된 또 하나의 존재가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적 진리가 인성을 입고 세상 가운데 오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태초 이전에 ‘아들’이라는 독립된 존재가 있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영원부터 존재하신 것은 신성 자체이며, ‘아들’이라는 표현은 시간 속에서 성육신하신 이후의 주님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니케아 이후 형성된 ‘영원한 아들의 출생’ 개념을 비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원한 출생이라는 개념이 성경보다 철학적 추론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원부터 두 번째 하나님이 존재했다고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셨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성령에 대한 강연자의 설명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는 성령은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며, 아버지께서 직접 오실 수 없는 곳에서 대신 역사하시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스베덴보리와 상당히 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성령을 제3의 독립 인격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령을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적 진리와 신적 활동으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주님의 역사하심이며, 인간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신적 영향력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또 하나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은 스베덴보리도 거부합니다. 그러나 강연이 성령을 오직 아버지의 영으로만 설명하는 반면, 스베덴보리는 성령은 영화되신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설명합니다. 부활 이후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영화된 인성으로부터 신적 진리가 직접 흘러나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아버지와 분리된 존재도 아니지만, 단순히 아버지만의 영도 아닙니다. 영화되신 주님의 신적 활동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다’라는 표현을 ‘한 존재’가 아니라 ‘뜻과 목적의 일치’로 해석하는 대목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이 논리는 일정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결합될 때, ‘하나’라고 표현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사랑과 진리의 일치가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완전한 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사랑과 지혜가 부분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주님 안에서는 신성과 인성이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하나됨과 주님의 하나되심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동일한 수준의 하나는 아닙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의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구별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강의는 현대 복음주의 신학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여러 난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진지한 시도를 보여 줍니다. 또한 삼위일체를 둘러싼 전통적 설명이 일반 신자들에게 논리적으로 매우 어렵게 들린다는 문제의식도 충분히 공감할 만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시각에서 보면, 이 강의는 전통 교회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는 상당한 통찰을 보이지만, 그 대안을 세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분리를 만들어 냅니다. 세 하나님을 거부하려다 두 하나님을 세우는 결과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보기에 참된 해결은 하나님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신성과 보이는 인성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성육신의 신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본 자는 나를 보았다’는 말씀을 가장 결정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은 아버지를 대표하는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의 렌즈에서 볼 때, 이 강의는 기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를 담고 있으나, 그 문제의 최종 해답은 ‘두 하나님’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계시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SY.30, ‘하나님의 속성 중 삼위일체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 아래 유튜브를 먼저 보신 후, 해설로 가시기 바랍니다. 첫머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강의는 삼위일체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진지한 시도라는 점입니다. 강사는 교회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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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28, ‘이게 교회입니까, 카페입니까?’
※ 아래 유튜브를 먼저 보신 후, 해설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교회를 떠난 아들과 뒤늦게 깨닫는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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