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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30, ‘하나님의 속성 중 삼위일체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bygracetistory 2026. 8. 4. 21:47

※ 아래 유튜브를 먼저 보신 후, 해설로 가시기 바랍니다.

 

 

 

 

첫머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강의는 삼위일체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진지한 시도라는 점입니다. 강사는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모호한 표현들을 정리하고, 삼신론과 양태론, 아리우스주의와 예수 유일주의를 구분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이러한 노력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일은 신앙의 기초이며, 잘못된 하나님 이해는 결국 잘못된 신앙생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바로 이 점에서는 강사와 깊이 공감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단순한 신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다만 여기서부터 스베덴보리는 전통적인 조직신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강의는 처음부터 ‘한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구분하면서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성경적이며 매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한 하나님 안에 세 위격(Persons)이 영원부터 존재한다’는 전통적 표현 자체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세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는 저서,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에서 니케아 이후의 삼위일체 교리가 아무리 ‘한 하나님’을 말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결국 세 분을 각각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머리로는 하나라고 말하지만, 기도할 때는 성부 따로, 성자 따로, 성령 따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의식 속에서는 세 신(神)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입술은 하나를 말하지만 생각은 셋을 만든다’는 역설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삼위일체는 부정되어야 할 교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할 교리입니다. 그러나 그 삼위는 세 위격이 아닙니다. 그는 저서, ‘주님(The Lord)과 ‘참된 기독교’에서 삼위는 한 분 주님 안에 있는 세 가지 신성한 본질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신성 자체(Divine Itself)로서의 성부, ‘신적 인성(Divine Human)으로서의 성자, 그리고 ‘신적 흘러나옴, 활동(Divine Proceeding)로서의 성령입니다. 이 셋은 세 인격이 아니라, 한 분 주님 안에서 영원히 하나를 이루는 신성의 세 가지 본질적 구별입니다. 그는 인간을 비유로 들어 영혼과 몸, 그리고 활동이 서로 구별되지만 한 사람을 이루듯이, 주님 안에서도 신적 사랑과 신적 지혜, 그리고 신적 작용, 활동이 하나를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 비유조차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세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성경적이라고 그는 판단합니다.

 

강의에서는 성경 번역의 문제를 상당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특히 영어의 ‘one’을 ‘한 분’으로 번역하느냐 ‘’으로 번역하느냐에 따라 교리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언어의 미묘한 차이가 신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라면 번역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을 것입니다. 말씀은 문자만으로는 결코 완전히 이해될 수 없으며, 문자 안에는 언제나 더 깊은 영적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서,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에서 성경의 문자, 즉 겉 글자만 가지고 교리를 세우면, 서로 다른 구절을 근거로 얼마든지 상반된 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말씀 전체를 비추는 하나의 중심 원리가 필요한데, 그 중심은 언제나 ‘주님’ 자신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어느 구절이든 결국 주님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특정 번역어 하나만으로 삼위일체를 결정하려는 접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전체가 누구를 계시하고 있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강의는 아리우스주의와 양태론을 모두 비판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스베덴보리는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낮추는 아리우스주의를 분명히 거부합니다. 주님은 단순한 최고의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양태론 역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삼위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가면만 바꾸어 쓰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단순한 역할 놀이가 아니라, 한 분 주님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신성의 구별입니다. 따라서 그는 아리우스주의와 양태론 모두를 넘어서려 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 신학이 독특한 이유입니다. 그는 전통적 삼위일체와 양태론 사이의 절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차원의 이해를 제시합니다.

 

특히 강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 위격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말씀하시며, 서로 교제하신다’는 설명은 스베덴보리와 가장 크게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순종하시는 장면을 결코 두 신적 인격 사이의 대화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화(榮化)가 완성되기 이전, 곧 아직 완전히 신성과 하나 되지 않은 인간성을 입고 계시던 주님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천국의 비밀’과 ‘주님’에서 그는 주님의 생애 전체를 인간성을 점차 신성으로 완전히 하나 되게 하시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전의 기도와 순종은 영원히 독립된 두 인격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성을 영화시키시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내적 싸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부활 이후에는 그 영화가 완성되어,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설명합니다.

 

강의는 니케아 공의회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니케아와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교회가 점차 사도적 단순성을 잃었다고 봅니다. 그는 초대교회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한 분 하나님으로 예배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철학적 개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님 이해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평범한 신자들은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신비’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신학자들은 끝없는 논쟁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새로운 계시를 통해 가장 먼저 바로잡으려 했던 것도 바로 이 하나님 이해였습니다.

 

강의 후반부에서는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삼위일체를 증명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 장면, 마28:19, 요14, 고후13:14 등은 전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본문들입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이 구절들을 모두 인정합니다. 다만 그는 이 본문들이 세 인격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 안에 있는 신성의 삼중성을 보여 준다고 읽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세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단수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와 본질과 권능 전체를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세 이름을 나열하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완전한 신성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스베덴보리는 성령에 대한 이해도 전통 신학과 다릅니다. 그는 성령을 제3의 독립된 신적 인격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부활하시고 영화되신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발출되는, 흘러나오는 신적 진리와 신적 능력이며, 천사들과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살아 있는 임재입니다. 마치 태양과 빛과 열이 분리될 수 없듯이, 주님과 성령 역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령이 단순한 힘이나 영향력만도 아닙니다. 성령은 주님 자신의 신적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제3의 인격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영화되신 주님께서 직접 사람 안에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강의를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삼위가 있는가 없는가’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이 질문으로 모입니다. 그는 저서, ‘주님’을 통해 구약의 여호와께서 신약에서 인간성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참된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결국 한 분 주님께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천국과 지옥’에서는 천국의 모든 천사들이 오직 한 분 주님만을 하늘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비밀’ 전권을 통해 성경 전체가 바로 그 한 분 주님만을 증언한다고 해설합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에게 삼위일체는 결코 세 인격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지혜와 작용이 완전히 하나 되신 한 분 주님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교리입니다.

 

따라서 이 강의는 삼위일체를 성경적으로 설명하려는 진지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시선에서 보면, 여전히 니케아 이후의 전통적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보기에 새로운 계시가 요청된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 신’을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시를 통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의 참뜻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최종 목적은 세 위격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나타나신 한 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저서, ‘주님’, ‘참된 기독교’, ‘천국의 비밀’을 통해 일관되게 증언한 핵심이며, 동시에 오늘날 삼위일체를 다시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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