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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7, 심화 1, 왜 태고교회에서는 ‘신앙을 따로 고백하는 것’조차 엄청난 악이었을까?

bygracetistory 2026. 8. 15. 21:47

AC.337.심화

 

1. 왜 태고교회에서는 신앙을 따로 고백하는 것조차 엄청난 악이었을까?

 

이 질문은 AC.337을 읽으면서 반드시 한번 짚어볼 만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신앙고백’이 오히려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집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를 분명하게 말하며, 올바른 교리를 지키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에서는 ‘신앙을 따로 고백하는 것’이 교리의 왜곡이었고, 심지어 ‘엄청난 악’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신앙고백 역시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교회의 영적 상태와 거듭남의 질서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사람에게 사랑과 신앙은 아직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과 ‘나는 내 아이가 소중하다고 믿는다’를 굳이 별개의 두 체계로 나누지 않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고 있으며, 그 앎은 사랑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아이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뒤집힌 것입니다. 태고교회에서 신앙을 사랑과 분리한다는 것은 이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그러한 질서의 전도(顚倒, 뒤집힘)를 의미했습니다.

 

더구나 처음의 분리는 아주 작아 보였을 것입니다. ‘사랑을 버리자’고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 안에 있던 신앙을 따로 떼어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가인’이 시작됩니다.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어도 신앙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해지고, 그다음에는 신앙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가능해지며, 결국 체어리티가 없어도 올바른 신앙만 있으면 된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AC.324-334에서 보았듯 그 끝은 체어리티의 소멸과 교리의 왜곡, 그리고 마침내 신앙과 체어리티에 폭력을 가하는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AC.337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매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태고교회 사람이 아니므로 먼저 진리를 배우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앙고백이나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가인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신앙과 교리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회개하게 하고, 자기 사랑을 낮추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으로 이끌고 있다면 신앙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이 정확하다는 사실 자체가 구원의 보증처럼 되고, 삶에서 체어리티가 사라져도 ‘나는 올바른 교리를 믿는다’는 사실로 자신을 정당화한다면 가인의 문제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AC.337에서 말하는 태고교회의 타락은 먼 옛날 어느 교회의 특이한 사건만은 아닙니다. ‘사랑 안에 있어야 할 진리를 사랑에서 떼어 내어 그 진리 자체를 높이는 것’은 어느 시대의 교회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교리가 사람을 주님과 이웃에게로 이끌기 위한 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신앙이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표지가 될 때, 우리는 가인의 문제를 우리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제 함께 붙들었던 원리가 다시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진리가 자기 입장을 섬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의 시작도 어쩌면 바로 그 질서의 미세한 전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진리와 신앙이 사랑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체어리티로 데려가고, 체어리티 안에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한 뒤, 마침내 자신도 그 사랑 안에서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AC.337의 핵심은 ‘신앙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비교에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핵심은 ‘신앙은 사랑과 분리될 때, 그 본래의 생명을 잃는다’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나왔고, 오늘날에는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심어집니다. 출발 순서는 달라졌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진리가 선과 결합하고, 신앙이 체어리티와 결합하여, 마침내 사람이 알고 믿는 것이 그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바로 그 결합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신앙을 신앙답게 하는 내적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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