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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8 심화 1, ‘가인’은 처음부터 ‘사랑에서 완전히 분리된 신앙’이었나?

bygracetistory 2026. 8. 17. 11:34

AC.338 심화

1. ‘가인은 처음부터 사랑에서 완전히 분리된 신앙이었나?

 

AC.338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앞의 개요에서 스베덴보리는 가인을 분명히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번째 자손, 처음 을 단순히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신앙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먼저 태고교회에도 신앙은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신앙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교리를 먼저 배우고 그것을 참이라고 인정하는 방식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서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주님으로부터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신앙은 사랑과 나란히 서 있는 별개의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사랑 안에서 살아 있었고, 사랑으로부터 신앙에 속한 것을 알았습니다. AC.337에서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도 바로 이 뜻입니다.

 

그런데 AC.338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신앙이 자체로 하나의 으로 인식되고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갑자기 신앙을 버렸거나 처음부터 거짓된 신앙을 만들어 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본래 사랑 안에서 살아 있던 신앙을 사랑과 별개로 성립할 수 있는 하나의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AC.338에서 가인=신앙이라고 한 말과 앞에서 가인=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라고 한 말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가인은 참된 것인 신앙을 붙들고 있지만, 그 신앙을 본래의 사랑의 질서에서 떼어 독립적인 것으로 세우는 교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가인이 처음에는 완전히 정상적인 신앙이었다가 나중에 분리된 신앙으로 변했다고 너무 선명하게 시간적 단계를 나누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AC.338의 바로 이 시점에서 이미 신앙을 자체로 하나의 으로 인정하는 분리의 성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분리의 결과가 처음부터 모두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4의 뒤를 따라가면 신앙이 점차 체어리티보다 자신을 높이고, 체어리티가 신앙의 질을 드러낸다는 질서를 거부하며, 결국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데까지 진행됩니다. 따라서 AC.338은 분리의 원리가 처음 드러나는 지점을 보여 주고, 후속 본문은 그 원리가 어디까지 발전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이 구별분리의 차이입니다. 신앙과 사랑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히려 그렇게 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신앙이고 무엇이 체어리티인지, 진리와 선이 어떻게 관계하는지 분명히 배우는 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구별된 신앙을 사랑 없이도 참된 신앙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데 있습니다. 신앙을 사랑과 구별하는 것과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전자는 이해를 위한 구별이지만 후자는 생명의 질서를 깨뜨리는 분리입니다.

 

부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차이를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부부에게 배려와 존중과 신실함의 원칙은 사랑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 원칙을 글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사랑을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서로 사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원칙들만 정확히 지키면 좋은 부부다라고 생각한다면 원칙은 사랑을 섬기는 자리에서 벗어나 사랑을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원칙 자체가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참된 것이 본래의 관계에서 분리된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중요하다’, ‘교리는 정확해야 한다’,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과 교리와 진리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분리되어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가인의 질서가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가인의 문제는 매우 미묘합니다. 처음부터 노골적인 거짓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참된 것 하나를 전체의 질서에서 떼어 내어 그 자체로 높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단 역시 반드시 처음부터 모든 진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 하나를 지나치게 높이고 다른 선과 진리와의 살아 있는 결합을 끊을 때에도 왜곡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337오늘날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후대 인간에게서는 신앙이 체어리티에 앞서며, 주님께서는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주십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분명히 고백하는 것 자체를 가인의 상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의 문제는 신앙이 먼저 나타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이 체어리티를 향하지 않고 사랑에서 분리된 채 독립적인 최종 목적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리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진리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선과 체어리티를 이루시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AC.338의 핵심은 가인은 신앙이다가인은 분리된 신앙이다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가인은 신앙을 의미하지만, 바로 그 신앙을 사랑 안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독립된 것으로 인정한 상태를 표상합니다. 그리고 창4의 뒤는 그 분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신앙을 독립된 것으로 바라보았고, 나중에는 그것을 체어리티보다 높였으며,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AC.338은 분리가 처음 드러나는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신앙 자체는 참된 것이지만, 그것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지만, 사랑에서 떨어져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신앙은 가인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신앙을 쉽게 가인이라고 판정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신앙을 살피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진리를 더 알수록 주님 앞에서 더 겸손해지고, 악을 더 잘 보고 피하며, 이웃의 참된 유익을 구한다면 그 진리는 체어리티와 결합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더 알수록 자기 옳음을 증명하고 다른 사람을 낮추며, 사랑보다 교리적 승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면 우리는 신앙이 그 생명의 자리에서 분리되기 시작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가인의 이야기는 남을 정죄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신앙과 사랑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게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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