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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9, 창4:1, ‘창4의 계보를 읽는 매우 중요한 해석 원리’

bygracetistory 2026. 8. 17. 20:26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1)

 

AC.339

 

앞의 세 장에서 아담과 그의 아내(man and his wife)가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밝혀졌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그 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잉태와 출생 역시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태고인들에게는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뭔가를 의미하게 하며, 그렇게 해서 계보를 구성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교회에 속한 것들은 서로 이런 관계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곧 자연적인 출생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처럼, 교회에 속한 것들도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잉태되고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는 교회에 속한 것들을 잉태(conceptions), ‘출생(births), ‘자손(offspring), ‘갓난아이(infants), ‘어린아이(little ones), ‘아들(sons), ‘(daughters), ‘청년(young men)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말씀의 예언적 부분에는 이와 같은 표현들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In the three foregoing chapters it has been sufficiently shown that by the “man and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so that it cannot be doubted, and this being admitted, it is evident that the conception and the birth effected by that church were of the nature we have indicated. It was customary with the most ancient people to give names, and by names to signify things, and thus frame a genealogy. For the things of the church are related to each other in this way, one being conceived and born of another, as in generation. Hence it is common in the Word to call things of the church “conceptions,” “births,” “offspring,” “infants,” “little ones,” “sons,” “daughters,” “young men,” and so on. The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abound in such expressions.

 

 

해설

 

AC.339는 앞으로 이어질 창4의 이름과 계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바로 앞 AC.338에서 스베덴보리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태고교회로, 그 교회의 ‘첫 번째 자손, 곧 처음 난 것’을 신앙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사랑 안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상태를 ‘가인’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태고교회가 어떻게 ‘잉태’하고 ‘낳으며’, 신앙이나 교리가 어떻게 그 교회의 ‘자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339는 바로 이 문제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태고인들은 어떤 영적 실재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그것의 성질을 나타내며, 서로에게서 생겨나는 것들을 마치 부모와 자녀처럼 연결하여 계보를 구성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계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 족보와 성격이 다릅니다. 자연적인 출생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태어나듯, 교회 안에서도 하나의 교리와 신앙의 모습이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그것이 다시 또 다른 교리와 신앙의 모습을 낳습니다. 태고인들은 바로 이러한 영적인 발생과 파생의 관계를 ‘잉태’와 ‘출생’, ‘부모’와 ‘자녀’, 그리고 ‘계보’의 형식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창4의 이름들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창세기 초기 부분에 대해 제시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가인과 아벨, 에녹과 이랏, 므후야엘과 므드사엘, 라멕 등을 오늘날의 역사책에 등장하는 개인들의 연속적인 가족사처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이름들은 태고교회 안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영적인 변화, 곧 교리와 신앙의 여러 모습에 붙여진 이름들입니다. 그러므로 창4의 계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사람은 역사적으로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이 이름은 무엇을 나타내며, 이것은 앞의 것으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가?’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실제 역사가 아니므로 단지 지어낸 비유일 뿐이다’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역사적 인물들의 가족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들이 나타내는 영적 현실은 실제였습니다. 태고교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의 관계가 달라졌고, 하나의 교리가 다른 교리를 낳았으며, 어떤 교리는 점차 왜곡되어 여러 이단과 분파로 갈라졌습니다. 말씀은 이러한 실제적인 교회의 변화를 사람의 잉태와 출생, 이름과 계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 영적인 뜻을 나중에 붙인 것’이라기보다, 영적인 사실을 이야기와 계보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잉태’와 ‘출생’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어떤 교리나 신앙의 모습은 아무런 원인 없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람들의 내면에서 어떤 생각이나 원리가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점차 하나의 확고한 관점이 되며, 마침내 교리와 가르침으로 밖에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다가 때가 되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내적으로 어떤 새로운 생각과 원리가 형성되는 것은 ‘잉태’에, 그것이 교리와 삶의 형태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출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앞 AC.338의 ‘가인의 분리’에 적용하면 더욱 잘 이해됩니다. 태고교회에는 본래 사랑 안에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신앙을 사랑 안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새로운 원리가 ‘잉태’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리가 점차 확고해져 하나의 교리와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됩니다. 다시 말해 ‘하와가 가인을 낳았다’는 것은 한 여인이 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는 역사적 사건을 속뜻으로 다시 해석한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어떤 새로운 교리적 흐름이 생겨나는 것을 출생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가인’은 다시 자기와 같은 성격의 것들을 낳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것이 된 신앙이라는 원리가 한 번 자리 잡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원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생각들이 생기고,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교리들이 파생되며, 그것들이 계속 갈라지면서 여러 이단과 분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서 에녹이 나오고, 다시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 라멕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단순히 여러 세대에 걸쳐 자손들이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교리적 원리에서 다른 것들이 계속 파생되어 나가는 관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339는 우리가 앞서 창4와 창5를 읽으면서 중요하게 살펴본 문제에도 빛을 줍니다. 가인 계열과 셋 계열을 두 집안의 연대기처럼 놓고 ‘어느 집안이 먼저였는가?’, ‘가인 계열이 끝난 다음 셋 계열이 시작되었는가?’라고 읽으면 말씀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계보들은 태고교회 안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영적 흐름을 각각 보여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인 계열과 셋 계열이 나란히 이어진다’고 말할 때에도, 두 실제 가문이 역사적으로 같은 시기에 병존했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태고교회 안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교리와 신앙의 흐름을 말씀이 각각의 계보라는 형식으로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어서 ‘잉태’, ‘출생’, ‘자손’, ‘갓난아이’, ‘어린아이’, ‘아들’, ‘’, ‘청년’ 같은 표현들을 열거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말씀에서 이러한 가족과 출생의 언어는 자연적인 가족관계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선과 진리가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며, 서로 결합하여 또 다른 영적인 것을 낳는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도 ‘잉태하다’, ‘낳다’, ‘아들’, ‘’, ‘자녀’ 같은 표현들이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자연적인 출생이 생명의 이어짐을 보여 주듯, 영적으로도 선과 진리, 또는 반대로 악과 거짓은 서로에게서 생겨나며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의 원리는 혼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으로 살아가면 그 진리에서 또 다른 선한 생각과 애정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다시 선한 말과 행동을 낳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거짓된 원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안에서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그 거짓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이 필요해지고, 그것은 다시 다른 악과 거짓을 낳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잉태하고 낳는’ 것입니다.

 

바로 이 원리가 가인의 계보를 무겁게 만듭니다. AC.338에서 살펴본 시작은 매우 작아 보였습니다. 사랑 안에 있던 신앙을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C.339는 우리에게 그 작은 원리가 혼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자손을 낳습니다. 하나의 분리가 또 다른 분리를 낳고, 하나의 교리적 왜곡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른 왜곡을 낳으며, 그렇게 이어지다 보면 처음에는 작았던 변화가 마침내 전혀 다른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4의 계보는 단순히 과거 태고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각 사람 안에서도 이러한 ‘잉태’와 ‘출생’은 계속 일어납니다. 어떤 생각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그 생각들은 애정과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국 하나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 안에서도 날마다 어떤 ‘계보’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받아들인 하나의 진리가 내일의 선한 선택을 낳을 수도 있고, 오늘 허용한 하나의 거짓이 또 다른 자기 합리화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AC.339는 창4의 낯선 이름들을 읽기 위한 단순한 사전 설명이 아닙니다. 앞으로 가인의 계보를 읽을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름을 보면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표현된 교리와 신앙의 모습을 보고, 출생을 보면서 생물학적 혈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무엇으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보 전체를 통하여 하나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결과들을 계속 낳아 가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AC.339를 읽고 난 뒤 창4의 계보 앞에서 우리가 계속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무엇을 낳고 있는가?’ 이 질문을 붙들고 가인의 계보를 읽으면, 창4는 더 이상 낯선 고대 이름들의 목록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 있던 신앙이 독립하기 시작한 작은 변화가 어떻게 하나의 교리가 되고, 그 교리가 다시 다른 교리들을 낳으며, 마침내 교회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영적 계보가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오늘 우리 안에서 어떤 생각과 사랑을 ‘잉태’하고 있으며, 그것이 장차 어떤 ‘자손’을 낳게 될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됩니다.

 

 

 

AC.338, 창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AC.338-340)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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