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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0, 심화 1, ‘창16:11’

bygracetistory 2026. 8. 18. 16:19

AC.340.심화

 

1. ‘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6:11)

 

 

AC.340에서 스베덴보리가 창16:11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를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는 이스마엘 자체를 해설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가인’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고대인들이 이름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AC.340의 중심에는 하와가 한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와 가인’이라는 이름의 관계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에 속한 것들은 본래 사랑 안에서 퍼셉션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의 신앙의 교리’로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은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새롭게 구별하여 세운 신앙의 교리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가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이것이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한 문장인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가 가인’이라는 이름과 연결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신앙의 교리를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성경 안에서 이름과 그것이 나타내는 상태가 연결되는 여러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16:11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에게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고 하면서 곧바로 그 이유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단순히 아이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이 아니라, 그때 일어난 일과 그 상태를 이름 안에 담고 있습니다. 하갈의 고통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사실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AC.340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마엘은 무엇을 상응하는가?’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라는 어떤 상태와 사건이 있고, 그것을 한 이름 안에 담아 이스마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르우벤, 시므온, 유다의 사례도 모두 같은 역할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예를 연이어 제시함으로써 가인’이라는 이름 역시 아무 의미 없이 붙인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가인에게 적용하면 구조가 선명해집니다. ‘이스마엘’에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르우벤’에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유다’에는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가인’에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로 표현된 상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AC.340은 그 상태가 무엇인지를 밝혀 줍니다. 바로 신앙에 속한 것들을 퍼셉션으로 알고 있던 상태에서 그것들을 따로 꺼내어 하나의 신앙의 교리로 정리하고, 그것을 마치 새롭게 얻은 무엇처럼 여긴 상태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창16:11을 인용한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AC.339에서 설명한 태고인들은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어떤 것들을 의미하게 했다’는 원칙을 실제 성경 구절을 통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AC.339에서 원리를 설명했다면, AC.340에서는 성경을 보라. 실제로 이름이 이런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았는가?’ 하며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특히 이것은 창4를 평범한 가족 족보처럼 읽지 않는 데 중요합니다. ‘가인’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한 개인의 이름으로만 읽으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하와의 말은 출산에 대한 감사 정도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이름이 그 이름으로 나타내는 어떤 성질과 상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태고교회 안에서 새롭게 나타난 교리의 성격을 표현한다는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이스마엘과 가인 사이에는 구별할 점도 있습니다. 16:11은 실제 역사적 시대에 속하는 기록이므로 하갈과 이스마엘의 역사적 사건이 있으면서 동시에 그 안에 속뜻이 있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창4는 앞서 AC.339에서 확인했듯 태고교회의 영적인 일들을 이름과 출생과 계보의 형식으로 표현한 기록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스마엘과 가인을 똑같은 종류의 역사적 인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 안에 그 이름으로 나타내는 어떤 상태와 의미를 담는다’는 고대의 명명 방식이 말씀 안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이스마엘을 예로 든 것입니다.

 

결국 창16:11 AC.340에서 인용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이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라는 의미를 담아 붙인 이름인 것처럼, ‘가인’이라는 이름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로 표현된 어떤 영적 상태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란 이전에는 마음에 새겨져 퍼셉션으로 알고 있던 신앙에 속한 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의 교리로 만들고, 그것을 마치 새롭게 얻은 독립된 무엇처럼 여기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용은 이스마엘을 설명하기 위한 곁가지가 아니라, ‘가인’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열쇠입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나타내는 상태를 담는 그릇이며, ‘가인’이라는 이름 안에는 태고교회에서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구별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변화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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