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40, 심화 2, ‘창29:32’
AC.340.심화
2.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32)
AC.340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9:32의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를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는, 앞서 이스마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대에는 이름을 단순한 호칭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어떤 일이나 상태, 성질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창4의 ‘가인’이라는 이름 역시 그 이름으로 나타내는 어떤 영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르우벤의 경우에는 이 관계가 본문 안에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레아는 야곱에게 라헬보다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아들을 낳은 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고 말하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합니다. ‘르우벤’이라는 이름에는 히브리어의 ‘보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따라서 레아가 경험한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보셨다’는 사건과 그때의 상태를 그 이름 안에 담은 것입니다. 이름과 그것을 붙이게 된 이유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AC.340에서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르우벤의 속뜻 자체를 여기서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가 생김 → 그 상태를 말로 표현함 → 그 표현에 해당하는 이름을 붙임’이라는 고대의 명명 방식을 보여 줍니다. 창29:32에서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것이 먼저 있고, 그것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르우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창4의 가인에게 적용하면 AC.340의 논리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 안에서 퍼셉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신앙에 속한 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의 교리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마음에 새겨져 있던 것을 이제는 지식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마치 새로운 무엇을 얻은 것처럼 여겼고, 그 상태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르우벤과 가인 사이에는 이런 공통된 구조가 있습니다. 레아에게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경험과 상태가 있었고, 그것을 ‘르우벤’이라는 이름에 담았다면, 태고교회에서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하나의 독립된 교리로 얻었다고 여기는 상태가 생겼고, 그것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과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르우벤의 사례를 통해 독자가 ‘가인’이라는 이름도 이런 방식으로 읽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르우벤’과 ‘가인’이 같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두 이름을 서로 상응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르우벤은 여기서 오직 ‘이름에 그 이름으로 나타내는 상태와 의미를 담는 고대의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AC.340의 관심은 ‘르우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보다 ‘왜 레아가 그 상태에서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했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는 앞의 이스마엘보다 한 가지를 더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창29:32에는 단순히 이름의 어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한 절 안에 함께 나타납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339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잉태’, ‘출생’, ‘자손’, ‘이름’, ‘계보’의 원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어떤 새로운 상태가 생겨나고,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며, 그 성질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AC.339와 AC.340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이어집니다. AC.339에서는 태고인들이 교회에 속한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서 생겨나는 관계를 잉태와 출생과 계보로 표현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AC.340에서는 이스마엘과 르우벤, 시므온, 유다, ‘여호와 닛시’를 실제 사례로 제시하면서 ‘말씀 안에서 이름이 이렇게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결과 독자는 창4의 ‘가인’을 단순한 사람 이름으로 읽는 데서 벗어나, 그 이름에 담긴 교리의 성격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라는 레아의 말과 ‘르우벤’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하와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와 ‘가인’의 관계도 한결 자연스러워집니다. 하와의 말은 단순히 출산 후의 감탄사가 아니라, 속뜻으로는 태고교회 안에서 새롭게 구별하여 세운 신앙의 교리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를 표현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창29:32을 AC.340에서 인용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르우벤’이라는 이름에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상태와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였듯이, ‘가인’이라는 이름에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로 표현된 상태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인의 경우 그 상태란, 본래 사랑 안에서 마음에 새겨져 있던 신앙에 속한 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의 교리로 만들고, 그것을 마치 새롭게 얻은 독립된 무엇처럼 인식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르우벤을 여기서 데려온 목적은 ‘르우벤’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인’을 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이름을 보거든 단순히 누구의 이름인가만 보지 말고, 왜 그 이름을 붙였으며 그 이름 안에 어떤 상태를 담았는지를 보라.’ 이것이 창29:32의 인용을 통해 AC.340이 우리에게 건네는 중요한 독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340, 심화 1, ‘창16:11’
AC.340.심화 1. ‘창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AC.340에서 스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