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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3, 창4:2, ‘참된 목자는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합니다’

bygracetistory 2026. 8. 21. 09:50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4:2)

 

AC.343

 

양 치는 자(shepherd of the flock)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에서 아주 익숙하게 사용하는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목자(shepherd)라고 하고, 인도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양 떼(flock)라고 합니다.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는 사람은 참된 목자가 아니며, 선으로 인도받지 않고, 무엇이 선인지를 배우지 않는 사람은 양 떼에 속하지 않습니다. ‘목자양 떼가 이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씀의 인용으로 확증할 필요는 거의 없지만, 다음 구절들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에서,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i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must be obvious to everyone, for this is a familiar figure in the Word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s. He who leads and teaches is called a “shepherd,” and those who are led and taught are called the “flock.” He who does not lead to the good of charity and teach it, is not a true shepherd; and he who is not led to good, and does not learn what is good, is not of the flock. It is scarcely necessary to confirm this signification of “shepherd” and “flock” by quotations from the Word; but the following passages may be cited.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30:23) The Lord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owest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Isa. 30:23)

 

여기서 땅의 소산의 양식(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은 체어리티를 나타냅니다. 다시 이사야에서, where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denotes charity. Again: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0:11) The Lord Jehovih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shall gather the lambs into his arm, and carry them in his bosom, and shall gently lead those that are with young. (Isa. 40:11)

 

다윗의 시편에서, In David: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80:1) Give ear, O Shepherd of Israel, thou that leadest Joseph like a flock; thou that sittest on the cherubim, shine forth. (Ps. 80:1)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6:2, 3) I have likened the daughter of Zion to a comely and delicate woman; the shepherds and their flocks shall come unto her, they shall pitch tents near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Jer. 6:2, 3)

 

에스겔에서, In Ezekiel:

 

3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8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36:37, 38) Thus saith the Lord Jehovih, I will multiply them as a flock of man, as a hallowed flock, as the flock of Jerusalem in her appointed times; so shall the waste cities be filled with the flock of man. (Ezek. 36:37–38)

 

이사야에서, In Isaiah: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60:7) All the flocks of Arabia shall be gathered together unto thee, the rams of Nebaioth shall minister unto thee. (Isa. 60:7)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양 떼를 모으는(gather the flock)사람들이며,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양 떼를 흩는(scatter the flock) 사람들입니다. 모든 모임과 결합은 체어리티에서 나오고, 모든 흩어짐과 분리는 체어리티가 없는 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y who lead the flock to the good of charity are they who “gather the flock”; but they who do not lead them to the good of charity “scatter the flock”; for all gathering together and union are of charity, and all dispersion and disunion are from want of charity.

 

 

해설

 

AC.343은 앞의 AC.341-342에서 아벨을 ‘양 치는 자’라고 한 이유를 말씀 전체의 ‘목자와 양 떼’라는 표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AC.341에서는 ‘양 치는 자’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AC.342에서는 체어리티를 상징하는 레위가 제사장직을 맡았으며, ‘양 치는 자’를 표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343은 왜 ‘양 치는 자’가 체어리티와 연결되는지를 구약과 신약 전체에 익숙한 목자의 표상을 통해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아주 간단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목자라고 하고, 인도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양 떼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목자의 역할은 주로 ‘가르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 중요한 조건을 붙입니다.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는 사람은 참된 목자가 아니다.’ 이것이 AC.343 전체를 읽는 열쇠입니다.

 

즉 목자의 본질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가르치고, 교리를 정확하게 설명하며, 사람들을 열심히 지도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참된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과 인도가 궁극적으로 사람을 ‘체어리티의 선’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목적도 사람이 그 진리를 따라 선하게 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목자의 가르침은 진리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그 진리가 향해야 할 곳은 체어리티의 선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342에서 살펴본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질서와 놀랍도록 잘 연결됩니다. 르우벤은 신앙을, 시므온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을, 레위는 체어리티를 상징했습니다. 참된 목자는 사람을 르우벤에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참인지를 알고 인정하게 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삶으로 행하도록 인도하며, 마침내 그 선을 사랑하여 행하는 체어리티에 이르도록 돕습니다. 그러므로 AC.342가 신앙이 체어리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면, AC.343은 목자가 사람을 어디로 인도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목회와 가르침을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생깁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가르쳤는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도 물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게 되고, 자기 교리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갈라서게 된다면 그 가르침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배우면서 사람 안에 겸손과 선의와 용서와 섬김이 자라나고, 무엇이 참으로 이웃에게 선한지를 분별하여 행하려 한다면 그 진리는 자신의 목적지인 체어리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AC.343이 ‘사랑만 있으면 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자는 ‘인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선인지를 알아야 선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선을 섬겨야 하고, 신앙은 체어리티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인의 문제가 바로 이 질서를 뒤집어 신앙을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세운 데 있었음을 생각하면, AC.343의 목자에 관한 설명은 창4의 중심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양 떼의 편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선으로 인도받지 않고, 무엇이 선인지를 배우지 않는 사람은 양 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상당히 강한 표현입니다. 양 떼에 속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교회에 등록되어 있거나 목자의 설교를 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를 따라 선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목자와 양 떼 모두를 판단하는 기준이 ‘체어리티의 선’에 놓여 있습니다.

 

이어지는 성경 구절들은 이 원리를 여러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사30:23에서는 주님께서 비를 주시고, ‘땅의 소산의 양식’을 풍성하게 하시며, 가축을 넓은 목장에서 먹이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땅의 소산의 양식’을 체어리티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은 속뜻으로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 선을 공급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40:11은 이 모습을 더욱 따뜻하게 보여 줍니다. 주 여호와께서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참된 목자직의 원형이 주님 자신에게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자라고 하는 것도 본래 자기에게 양 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양들을 주님을 대신하여 섬기는 쓰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목자는 양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주님의 선으로 인도합니다.

 

80:1에서는 아예 주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부르며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목자직의 중심에는 결국 주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인도하시며, 목자는 그 인도에 쓰임을 받습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목자는 양 떼를 주님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으로 여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AC.343의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설명을 하나의 매우 중요한 원리로 모읍니다. ‘모든 모임과 결합은 체어리티에서 나오고, 모든 흩어짐과 분리는 체어리티가 없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모인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참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라는 뜻입니다. 외적으로 같은 교리를 고백하고, 같은 예배에 참석하며, 같은 조직에 속해 있어도 서로를 향한 선의가 없다면 내적으로는 하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적인 생각과 판단에 차이가 있어도 서로의 선을 바라고, 주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한다면 더 깊은 차원에서는 결합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인’의 문제가 다시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하면 결국 ‘분리’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신앙과 체어리티 사이의 작은 분리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진행되면서 가인은 자기 형제 아벨을 견디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그를 죽입니다. AC.343의 마지막 원리를 창4 전체에 적용하면, 가인의 역사는 ‘체어리티가 사라질수록 분리와 흩어짐이 깊어지는 과정’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교회의 일치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가장 깊은 힘은 모든 사람이 모든 교리적 세부 사항에서 똑같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진리는 중요하고, 교리적 오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실제로 결합시키는 것은 체어리티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선을 품고, 그가 주님 안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진리를 자기 우월성을 증명하는 무기가 아니라 이웃의 선을 위한 빛으로 사용하는 데서 참된 결합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AC.343의 마지막 문장은 목회자에게도, 성도에게도 상당히 엄중한 자기 점검의 기준이 됩니다. 내가 전하고 붙들고 있는 진리가 사람들을 주님과 이웃에게 더 가까이 가게 하는가, 아니면 끊임없이 편을 나누고, 적을 만들며, 사람을 밀어내게 하는가? 내가 진리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체어리티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흐리면서 참된 선으로 인도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AC.343은 진리와 체어리티 어느 하나를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체어리티의 선으로 사람을 인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양 치는 자’ 아벨의 의미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아벨은 단순히 ‘착한 쪽’, 가인은 ‘나쁜 쪽’이라는 대비가 아닙니다. 아벨은 신앙이 본래 향해야 할 체어리티의 선을 나타내며, ‘양 치는 자’라는 그의 모습은 그 선을 돌보고, 먹이며, 삶으로 행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는 것은 신앙이 단지 체어리티라는 한 덕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신앙 자체가 사람을 선으로 인도해야 하는 자신의 목적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AC.343의 핵심은 ‘참된 목자는 어디로 인도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체어리티의 선으로’입니다. 참된 목자는 진리를 가르치되 진리 자체에 사람을 붙잡아 두지 않고, 그 진리가 삶이 되고, 선이 되도록 인도합니다. 그리고 참된 양 떼 역시 단순히 듣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무엇이 선인지를 배우며, 그 선으로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그 결과가 ‘모임과 결합’입니다. 체어리티는 주님과 사람을 결합하고 사람과 사람을 결합합니다. 반대로 체어리티가 사라지면, 아무리 신앙을 크게 외쳐도 결국 분리와 흩어짐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AC.343은 목자와 양 떼에 관한 해설이면서 동시에 창4의 가인과 아벨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신앙이 사람을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할 때는 모이고 결합하지만,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될 때는 흩어지고 갈라집니다.’ 이것이 ‘양 치는 자’ 아벨을 통해 말씀이 보여 주는 참된 목자의 모습입니다.  

 

 

심화

 

1. ‘양 떼를 먹이고, 모으고, 품고, 인도하시는 주님(40:11)

 

 

AC.343, 심화 1, ‘양 떼를 먹이고, 모으고, 품고, 인도하시는 주님’ (사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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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2, 창4:2, ‘신앙에서 행위로, 행위에서 체어리티로’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4:2) AC.342 교회의 두 번째 자손이 체어리티라는 것은, 교회가 잉태하고 낳는 것은 신앙과 체어리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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