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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8, 창4:3, 가인의 ‘땅의 소산’ - 체어리티 없는 죽은 행위와 살아 있는 열매

bygracetistory 2026. 8. 24. 22:51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3)

 

AC.348

 

땅의 소산’(fruit of the ground)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의 행위를 뜻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분명합니다.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의 행위는 신앙이 없는 행위이며, 자체로 죽은 행위입니다. 그것들은 오직 사람에게만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관하여 예레미야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That by thefruit of the ground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렘12:1-2, 4)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12, 4)

 

입에는 가까우나 마음에는 멀다’(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것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며, 그들에 관하여땅이 슬퍼한다’(the land mourns) 말합니다. 같은 선지서에서는 그러한 행위를행위의 열매’(fruit of works)라고 부릅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the land mourns.”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 10)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Jer. 17:910)

 

미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7:13)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Micah 7:13)

 

그러한열매(fruit) 열매가 아니며, 그러한행위(work)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와 뿌리가 모두 멸망하는 것을 아모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That suchfruitis no fruit, or that thework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암2:9)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Amos 2:9)

 

다윗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시21:10)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Ps. 21:10)

 

그러나 체어리티의 행위는 살아 있으며, 그것들에 관하여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는다’(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고 선언합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사37:31)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Isa. 37:31)

 

위로 열매를 맺는다’(bear fruit upward)는 것은 체어리티로부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를 같은 선지서에서는 ‘아름답고 영화로운 열매’(fruit of excellence)라고 부릅니다. Tobear fruit upwardis to act from charity. Such fruit is called the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4:2)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Isa. 4:2)

 

그것은 또한 ‘구원의 열매’(fruit of salvation)이며, 같은 선지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부릅니다. It is also the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 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사45:8)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Isa. 45:8)

 

 

해설

 

AC.348은 앞의 AC.346에서 간략하게 밝힌 ‘땅의 소산’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AC.346에서는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이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의 행위’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348은 왜 그런 행위가 참된 열매가 될 수 없는지를 여러 말씀을 통해 보여 줍니다.

 

첫 문장이 이 글 전체의 핵심입니다.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의 행위는 신앙이 없는 행위이며, 자체로 죽은 행위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선행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 행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입니다.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도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AC.346에서 이미 보았듯이 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땅을 경작했고, 소산을 거두었으며, 그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따라서 외적으로 보면 ‘행위’도 있고 ‘예배’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죽은 행위’라고 합니다. 그 행위가 ‘오직 사람에게만 속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 사람’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외적인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체어리티는 결국 자연계에서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문제는 그 외적인 행위가 속 사람의 선과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행위라면 외적인 행위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 명예, 인정, 보상, 종교적 우월성 같은 목적에서 행한다면 겉으로 아무리 선해 보여도 그 행위에는 천국의 생명이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가장 먼저 렘12:1-2, 4을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외적으로는 아주 성공적입니다. 종교적인 삶도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말이 이어집니다.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이것은 가인의 예배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말하고, 외적으로는 제물을 드리며, 종교적인 행위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사랑은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라고 해석합니다. 신앙의 말은 입에 있지만 그 신앙의 생명이 되어야 할 체어리티는 마음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이 슬퍼한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될 때, 피해를 입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종교생활만이 아닙니다. 교회 자체가 황폐해집니다. 교리는 남아 있고, 예배도 남아 있으며, 종교적 활동도 활발할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과 선이 사라지면 교회의 내적 생명은 메말라 갑니다.

 

이어지는 렘17:9-10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외적으로 나타난 행위만 보지 않으시고,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십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행위의 영적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외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나온 내적 사랑과 의도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원문의 ‘폐부’(reins)는 고대 성경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자연적인 장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과 애정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만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지, 그 행위의 내적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갚으신다는 말씀에서 ‘행위의 열매’가 중요해집니다. 행위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내적인 사랑은 외적인 삶을 통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행위와 내면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7:13의 ‘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역시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열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열매가 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랑도 자기에게 맞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열매’라는 말이 나올 때 무조건 선행을 뜻한다고 정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어떤 뿌리에서 나온 열매인지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암2:9의 인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모리 사람은 ‘백향목 높이’ 같고 ‘상수리나무’처럼 강합니다. 외적으로는 거대하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위의 열매’뿐 아니라 ‘아래의 뿌리’까지 멸하십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열매와 뿌리를 함께 언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열매는 행위이고, 뿌리는 그 행위를 낳는 내적 근원입니다. 뿌리가 악하면 그 열매 역시 영적으로 살아 있는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AC.348은 여기서 놀라운 대조를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는 ‘죽은 열매’를 설명했지만 사37:31부터는 ‘살아 있는 열매’로 전환합니다.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스베덴보리는 ‘위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아주 간결하게 ‘체어리티로부터 행하는 ’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한 문장이 AC.348 전체를 압축합니다. 참된 열매는 단순히 외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체어리티로부터 행하는 것입니다.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에는 영적 삶의 질서가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뿌리가 내려야 보이는 곳에서 열매가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사랑과 선을 심으시고, 그것이 내적 생명이 될 때, 그 생명이 자연적인 삶으로 내려와 말과 행동과 쓰임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행위는 겉에서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앞의 가인과 정확히 대조됩니다. 가인에게도 ‘땅의 소산’이라는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에서 나온 것이므로 ‘죽은 열매’였습니다. 반면 사37:31의 열매는 체어리티라는 살아 있는 뿌리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차이는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 행위의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있습니다.

 

4:2에서는 이러한 열매를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45:8에서는 그 열매가 ‘구원의 열매’로까지 나아갑니다. 하늘에서 의가 내려오고, 땅이 열려 구원이 싹트며, 공의가 함께 자랍니다. 여기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과 아래에서 열매 맺는 것이 하나의 질서를 이룹니다. 모든 참된 선의 근원은 주님에게 있고, 인간은 그것을 받아 자신의 삶에서 열매 맺습니다.

 

따라서 ‘체어리티로부터 행한다’는 것을 인간이 자기 힘으로 선한 마음을 만들어 선행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45:8의 마지막 말이 그 점을 분명히 합니다. ‘ 여호와가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살아 있는 열매의 궁극적인 근원은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속 사람 안에 선을 심으시고, 인간이 자유롭게 그 선을 받아 살아갈 때, 그것이 겉 사람을 통해 행위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보면 AC.348에서 ‘뿌리’와 ‘열매’의 관계는 곧 ‘ 사람’과 ‘ 사람’의 관계와 연결됩니다. 체어리티 없는 행위는 겉 사람에만 머물기 때문에 죽어 있습니다. 반면 살아 있는 행위는 속 사람 안에 있는 체어리티에서 시작하여 겉 사람의 실제 삶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참된 거듭남은 속 사람만 변화시키거나 겉 행동만 고치는 일이 아니라, 속의 선이 겉의 삶으로 흘러나와 둘이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AC.348은 결국 우리가 선행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먼저 ‘어디에서 그것을 행했는가?’를 묻게 합니다. 예배, 봉사, 헌금, 구제, 전도, 설교, 성경공부 같은 종교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은 귀한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 있는 열매가 되려면 체어리티라는 뿌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AC.348의 중심은 ‘행위가 중요하다’거나 ‘신앙보다 행위가 중요하다’는 단순한 주장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과 체어리티와 행위는 하나의 생명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앙의 진리는 사람을 체어리티로 이끌고, 체어리티는 실제 행위로 열매 맺습니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행위가 있어도 죽은 행위가 될 수 있지만, 이 질서가 살아 있으면 사람의 일상적인 작은 쓰임까지도 ‘위로 열매를 맺는’ 살아 있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가인의 ‘땅의 소산’과 사37:31의 ‘위로 맺는 열매’는 겉으로는 모두 ‘열매’이지만 영적으로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체어리티 없는 신앙에서 나온 죽은 열매이고, 다른 하나는 체어리티에서 나온 살아 있는 열매입니다. 결국 열매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열매의 외형이 아니라 그 뿌리입니다.

 

### 인용 심화 판단

 

AC.348은 인용 구절이 많지만, 이번에는 별도의 인용 장절 심화를 거의 만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여러 구절을 인용한 목적이 하나의 논증 안에서 매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렘12:1-2, 4과 렘17:9-10, 미7:13, 암2:9, 시21:10은 모두 ‘체어리티 없는 행위와 열매는 죽어 있다’는 앞부분을 뒷받침하고, 사37:31, 사4:2, 사45:8은 ‘체어리티에서 나온 행위는 살아 있는 열매다’라는 뒷부분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가운데 하나를 꼭 심화한다면 사37:31의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를 추천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위로 열매를 맺는 것은 체어리티로부터 행하는 ’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에, AC.348의 핵심을 한 구절로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해설에서 이미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시간과 작업량을 생각하면 별도 심화 없이 넘어가도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 블로그 제목

 

열매의 생명은 뿌리에서 결정됩니다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살아 있는 행위’ (AC.348)

 

본문 표현에 좀 더 밀착한다면 ‘가인의땅의 소산’ — 체어리티 없는 죽은 행위와 살아 있는 열매’ (AC.348)도 좋습니다. 저는 두 번째 제목을 조금 더 추천합니다. 앞의 AC.346-347과 연결해서 읽을 때 무엇을 설명하는 글인지 바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 추천 태그 10

 

스베덴보리, 천국의 비밀, Arcana Coelestia, AC348, 창세기 4장, 가인의 제물, 땅의 소산, 신앙과 체어리티, 선행과 체어리티, 말씀의 속뜻

 

이제 사총사 덕분에 마지막 한 줄만 그대로 복사해서 태그 입력창에 넣으면 ‘촤라락!’이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