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52, 창4:4, ‘왜 장자가 거룩했는가 -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4:4)
AC.352
‘양의 첫 새끼’(firstlings of the flock, ‘양 떼의 처음 난 것’)는 오직 주님께만 속한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표상교회에서 처음 난 것, 곧 장자에 관한 규례에서 분명합니다. 처음 난 것은 모두 거룩했는데, 이는 그것들이 오직 홀로 ‘장자’(firstborn)이신 주님을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거기서 비롯된 신앙이 ‘장자’(firstborn)입니다.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인간에게서 오는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이 ‘장자’(firstborn)이십니다. 이것은 고대교회들에서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여호와께 거룩한 것으로 드림으로써 표상되었습니다. (출13:2, 12, 15) That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ignify that which is of the Lord alone is evident from the firstlings or firstborn in the representative church, which were all holy, because they had relation to the Lord, who alone is the “firstborn.”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are the “firstborn.” All love is of the Lord, and not one whit of it is of man, therefore the Lord alone is the “firstborn.” This was represented in the ancient churches by the firstborn of man and of beast being sacred to Jehovah; (Exod. 13:2, 12, 15)
2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12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5그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출13:2, 12, 15)
또한 속뜻으로 사랑을 상징하는 레위 지파가, 비록 속뜻으로 신앙을 상징하는 르우벤과 시므온보다 나중에 태어났지만,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받아들여지고 제사장직을 맡게 된 것으로도 표상되었습니다. (민3:40-45; 8:14-20) and by the tribe of Levi, which in the internal sense signifies love—though Levi was born after Reuben and Simeon who in the internal sense signify faith—being accepted instead of all the firstborn, and constituting the priesthood. (Num. 3:40–45; 8:14–20)
40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남자를 일 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41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2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계수하니 43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처음 태어난 남자의 총계는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더라 4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5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민3:40-45)
14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5네가 그들을 정결하게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16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초태생 곧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19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20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민8:14-20)
주님께서 그분의 인성에 관하여 모든 것의 장자이심을 다윗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Of the Lord as the firstborn of all, with respect to his human essence, it is thus written in David:
26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시89:26-27) He shall call me, my Father, my God, and the rock of my salvation. I will also make him my firstborn, high above the kings of the earth. (Ps. 89:26–27)
또 요한의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John: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5) Jesus Christ the firstborn of the dead, and the prince of the kings of the earth. (Rev. 1:5)
예배에서 처음 난 것들은 주님을 상징하고, 교회의 처음 난 것은 신앙을 상징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Observe that the firstborn of worship signify the Lord, and the firstborn of the church, faith.
해설
AC.352는 앞의 AC.350에서 ‘양 떼의 처음 난 것’이 왜 ‘오직 주님께만 속한 거룩한 것’을 상징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단순히 성경에서 ‘장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과 신앙의 관계, 그리고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참된 사랑의 근원이 누구인가를 매우 깊이 다룹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문장은 ‘사랑과 거기서 비롯된 신앙이 ‘장자’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랑과 신앙’이라고만 하지 않고 ‘사랑과 거기서 비롯된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인과 아벨을 통해 계속 살펴본 태고교회의 본래 질서를 다시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신앙이 사랑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먼저 있었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사랑에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문장은 이 글의 핵심이라 할 만큼 중요합니다.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인간에게서 오는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양 떼의 처음 난 것’을 오직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인간이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사랑이나 체어리티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실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선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생명과 최초 근원은 인간의 proprium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인간이 받아들여 마치 자기 것으로 느끼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내가 이렇게 사랑했다’는 자기 의보다는 ‘주님께서 사랑할 수 있게 하셨다’는 인정이 깊어집니다.
이 때문에 ‘처음 난 것’이 거룩했습니다. 처음 난 동물이나 사람 자체에 어떤 신비한 거룩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모든 선과 사랑의 처음이신 주님을 표상했기 때문입니다. 출13:2, 12, 15에서 처음 난 것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리게 하신 규례도 바로 이 내적 실재를 표상했습니다. 인간에게 처음이며 가장 귀한 것은 본래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그 표상 안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AC.352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부분은 레위 지파에 관한 설명입니다. 자연적인 출생 순서로 보면 레위는 장자가 아닙니다. 르우벤이 첫째이고 시므온이 둘째이며 레위가 셋째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속뜻에서 ‘레위’가 사랑을, 르우벤과 시므온이 신앙에 속한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실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 지파가 여호와께 구별되었고 제사장직을 담당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적인 출생 순서와 영적인 질서가 서로 달라집니다. 자연적인 계보에서는 르우벤과 시므온이 레위보다 앞서지만, 내적 질서에서는 사랑이 신앙의 근원이므로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장자를 대신하여 ‘사랑’을 상징하는 레위가 선택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인의 문제를 통해 보아 온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가인의 오류는 신앙 자체에 있지 않았습니다. 본래 사랑에서 나온 신앙을 사랑과 분리하여 독립시키고, 마침내 사랑보다 앞세운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AC.352의 레위에 관한 설명은 그 질서를 다시 바로잡습니다. 영적인 질서에서는 사랑이 근원이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참된 신앙으로 존재하려면 계속 사랑을 바라보고 사랑을 섬겨야 합니다.
여기서 ‘장자’라는 상응에는 흥미로운 이중성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에 ‘예배에서 처음 난 것들은 주님을 상징하고, 교회의 처음 난 것은 신앙을 상징한다’고 특별히 주의를 줍니다. 따라서 ‘장자’라는 말을 어디에서나 기계적으로 하나의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의 표상으로서 처음 난 것을 주님께 드릴 때 그것은 주님을 가리키지만,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첫 번째 것을 말할 때에는 신앙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AC.338에서 가인을 태고교회의 ‘첫 번째 자손’, 곧 신앙이라고 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교회의 삶에서 나타나고 인식되는 첫 자손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생명과 근원은 사랑이며, 그 사랑 자체는 주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처음 난 것’이라고 해서 신앙이 사랑보다 우월하거나 독립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신앙은 자신을 낳은 사랑과 자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시89:26-27과 계1:5의 인용은 이 모든 표상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향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은 ‘장자’이십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그분의 인성에 관하여’ 주님이 모든 것의 장자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처음 난 것에 관한 여러 표상은 궁극적으로 주님을 향하며, 주님 안에서 그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 점에서 아벨이 ‘양 떼의 처음 난 것’을 드렸다는 말씀의 의미도 더욱 깊어집니다. 아벨은 체어리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체어리티가 드리는 것은 ‘처음 난 것’, 곧 오직 주님께 속한 거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체어리티는 자기 안에 있는 사랑과 선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며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이것은 참된 예배의 내적 자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봉사하고, 말씀을 전하고, 어떤 선한 쓰임을 행했을 때 그것을 자기 공로로 붙들면 그 순간 선의 질서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선의 생명은 주님에게서 왔습니다’라고 인정하면, 인간은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자유롭게 행하면서도 그 근원을 주님께 돌립니다. 이것이 아벨이 ‘양 떼의 처음 난 것’을 드리는 모습 속에 들어 있는 중요한 속뜻입니다.
따라서 AC.352는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온다’는 유입의 원리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인간은 생명과 사랑의 독립적인 근원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아들일 것인지, proprium의 사랑을 따를 것인지 인간은 자유 안에서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거듭남은 점점 더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삶의 생명으로 삼는 과정입니다.
결국 AC.352가 말하는 ‘양 떼의 처음 난 것’의 핵심은 단순히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교훈이 아닙니다. 더 깊은 속뜻은 ‘우리 안의 모든 참된 사랑과 선의 처음과 근원은 주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고, 참된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오며, 체어리티의 행위 역시 그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아벨의 제물이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아벨의 예배에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질서’가 들어 있습니다. 가인의 길은 신앙을 사랑에서 떼어 독립시키는 길이었다면, 아벨의 길은 사랑과 선의 근원을 주님께 돌리고 그 사랑에서 신앙과 행위와 예배가 나오게 하는 길입니다. 결국 AC.352는 우리에게 ‘내 안에 있는 선의 근원을 누구에게 돌리고 있는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심화
1. ‘왜 장자가 아닌 레위가 모든 장자를 대신했는가 - 사랑과 신앙의 내적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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