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53, 심화 1, ‘왜 모세의 노래에는 젖과 기름과 밀과 포도주의 표현이 이토록 많이 나오는가 - 천적인 것들의 무수한 종류’
AC.353.심화
1. ‘왜 모세의 노래에는 젖과 기름과 밀과 포도주의 표현이 이토록 많이 나오는가 - 천적인 것들의 무수한 종류’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신32:14)
AC.353에서 스베덴보리는 신32:14을 인용한 뒤 매우 이례적으로 강한 말을 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의 의미는 속뜻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속뜻이 없다면 ‘소의 엉긴 젖’, ‘양의 젖’, ‘어린 양의 기름’, ‘숫양과 염소의 기름’, ‘바산의 아들들’, ‘밀의 콩팥의 기름’, ‘포도의 피’와 같은 표현들은 ‘단지 말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단순히 이스라엘이 풍요로운 땅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에서는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인 것들’의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AC.353의 출발점을 다시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인 것은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앙 역시 사랑에서 비롯될 때에는 천적’이며, ‘체어리티는 천적인 것’, ‘체어리티의 모든 선은 천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32:14에 나오는 풍성한 음식들의 목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것을 자연적인 음식의 목록이 아니라 사랑과 선에 속한 여러 천적 상태를 표현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이 AC.353 [3]의 첫 문장입니다. ‘천적인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그보다도 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부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신32:14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 ‘선’, ‘체어리티’라고 하면 각각 하나의 단순한 개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사랑과 선은 그렇게 단조로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은 사람과 천사의 서로 다른 상태와 쓰임과 수용 정도에 따라 셀 수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것을 하나의 자연물로만 표상하지 않고 젖, 기름, 밀, 포도즙 등 서로 다른 수많은 자연적 형상을 사용합니다.
‘소의 엉긴 젖’(butter of kine)부터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AC.353에서 이 표현 하나하나의 세부 상응을 아직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만을 근거로 ‘소의 엉긴 젖은 정확히 이것이다’라고 지나치게 세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소의 엉긴 젖’ 역시 천적인 것의 어떤 종류와 세부 종류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적인 젖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선의 질입니다.
‘양의 젖’도 마찬가지입니다. 젖은 생명을 먹이고 자라게 하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AC.353의 직접적인 초점은 각각의 식품에 고정된 사전식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이 서로 다른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선은 하나이면서도 그것을 받는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것이 똑같아지는 획일성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들이 하나의 주님을 중심으로 질서를 이루는 하나 됨입니다.
이어 ‘어린 양의 기름’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AC.353 전체에서 이미 설명한 ‘기름’의 상응이 직접 적용됩니다. ‘기름’은 천적인 것 자체, 곧 사랑에 속한 선을 상징합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기름 하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 등 서로 다른 동물들과 관련된 표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천적 선이 하나의 획일적인 선이 아니라 무수한 종류와 세부 종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산에서 난 숫양’이라는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문자적으로 바산은 풍요로운 목축지로 유명한 지역이므로 좋은 가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AC.353에서 스베덴보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지리적 풍요 자체가 아닙니다. 그는 ‘바산의 아들들’까지 천적인 것들의 종류와 세부 종류를 나타내는 표현 가운데 하나로 포함합니다. 즉 말씀의 지명과 동물과 음식은 서로 무관하게 늘어놓은 장식적 표현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서로 구별되는 영적·천적 실재들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매우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영어 원문은 ‘the fat of the kidneys of wheat’입니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밀의 콩팥의 기름’ 정도가 됩니다. 개역개정은 이를 자연스럽게 ‘지극히 아름다운 밀’이라고 번역합니다. 성경의 문자적 문체만 생각하면 상당히 기이한 표현입니다. 밀에 무슨 콩팥이 있으며, 그 콩팥에 무슨 기름이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표현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속뜻이 없으면 단지 말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콩팥’과 ‘기름’이라는 표현은 가장 깊고 귀한 부분을 나타내는 표상적 언어이고, 여기에 ‘밀’이 결합됩니다. 다만 AC.353 자체에서는 ‘밀의 콩팥의 기름’이 구체적으로 어느 종류의 천적 선인지를 더 세분하여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스베덴보리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특이한 표현까지도 무의미한 시적 과장이 아니라 천적인 선의 특정한 종류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포도의 피’가 등장합니다. 개역개정은 ‘포도즙의 붉은 술’이라고 번역하지만, AC.353의 영어 표현은 ‘the blood of the grape’입니다. 자연적인 포도에 ‘피’가 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문자적으로만 보면 매우 특이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표상적 언어에서는 포도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즙을 ‘피’라고 부르는 자연적 형상을 통해 더 깊은 실재를 담을 수 있습니다. AC.353은 이 역시 천적인 것들의 종류와 세부 종류 가운데 하나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베덴보리의 ‘상응’을 읽는 방법에 관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상응을 단순히 ‘기름 = 사랑’, ‘포도주 = 신앙’ 같은 일대일 대응표로만 이해하면 말씀의 풍요로움을 오히려 축소할 수 있습니다. AC.353은 천적인 것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그보다도 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부 종류’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표상하는 자연계의 사물들도 그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무수히 다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사랑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이웃의 선을 바라는 사랑,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랑,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 맡겨진 쓰임을 성실히 행하려는 애정 등은 모두 선과 사랑에 속하면서도 그 질과 쓰임이 서로 다릅니다. 더구나 각각의 사랑 안에도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의 선은 하나의 무색무취한 ‘선’이 아니라 주님의 무한한 선이 유한한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나타나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모든 천사가 선하다고 해서 모든 천사가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각 천사는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각 공동체도 서로 다른 주된 선과 쓰임을 중심으로 질서를 이룹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다양성은 한 분 주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하나의 천국을 이룹니다. 신32:14의 풍성한 음식들은 이러한 ‘하나 안의 무수한 다양성’을 자연적인 형상으로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음식으로 표현될까요? 음식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이 되고 힘이 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선과 진리는 인간의 내면을 먹이고 살아 있게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먹고 마시는 표현이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신32:14에서도 이스라엘이 먹고 마시는 모습은 속뜻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여러 종류의 선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내적 생명을 얻는 상태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신32:14은 바로 앞 AC.353 [2]의 시36:8-9와도 잘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며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신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살진 것’과 ‘생명의 원천’을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복락의 강물’과 ‘빛’을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만족하는 말씀의 표현들이 결국 인간의 속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천적인 것들의 근원입니다. AC.353은 첫머리에서 ‘기름’이 천적인 것을 뜻한다고 하면서 ‘이것 역시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앞의 AC.352도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인간에게서 오는 것은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신32:14에 펼쳐지는 이 풍성한 천적 선의 세계는 인간이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류와 세부 종류의 선은 궁극적으로 주님에게서 옵니다.
이 사실은 신32:14을 모세의 노래 전체 문맥에서 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스라엘이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기름과 밀과 포도즙을 스스로 만들어 자기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인도하시고 먹이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속뜻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며 여러 종류의 사랑과 선으로 그의 속 사람을 먹이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마치 자기 것으로 느끼고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창4:4의 아벨에게 돌아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AC.352에서 ‘처음 난 것’은 오직 주님께 속한 거룩한 것을 뜻했고, AC.353에서 ‘기름’은 오직 주님께 속한 천적인 것, 곧 사랑의 선을 뜻합니다. 따라서 신32:14의 긴 인용은 창4:4의 짧은 ‘기름’이라는 한 단어 안에 얼마나 광대한 천적 실재가 담겨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된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기름’을 단순히 ‘좋은 마음’ 정도로 이해해서는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기름’ 안에는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헤아릴 수 없는 종류와 상태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주님께서는 사람 안에서 단 하나의 선만 키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 관계 전체, 쓰임 전체에 서로 다른 선들을 질서 있게 형성해 가십니다.
그래서 AC.353의 신32:14 인용은 스베덴보리의 말씀 이해를 보여 주는 매우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문자적 의미에서 보면 젖과 기름과 밀과 포도즙으로 이루어진 풍요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그 문자 안에는 천국의 사랑과 선의 무수한 종류들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적인 음식의 다양성이 영적인 생명을 이루는 선의 다양성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응입니다.
결국 신32:14의 핵심은 ‘어떤 음식이 정확히 어떤 선을 뜻하는가?’를 하나하나 외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AC.353이 특별히 강조하는 더 큰 원리는 ‘천적인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천국과 인간 안에서는 무수한 선과 쓰임으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말씀 역시 그 풍요를 ‘소의 엉긴 젖’, ‘양의 젖’, ‘어린 양의 기름’, ‘바산의 숫양’, ‘염소’, ‘밀의 콩팥의 기름’, ‘포도의 피’라는 서로 다른 자연적 형상들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우리에게 말씀을 읽는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문자적으로 낯설고 이상해 보이는 표현을 만나더라도 ‘왜 성경에 이런 표현이 필요할까?’ 하며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세부에 아르카나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AC.353의 표현대로 속뜻이 없다면 그것들은 ‘단지 말들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응을 통하여 열어 보면, 그 낯선 말들 하나하나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선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풍요의 중심에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사랑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신32:14의 풍성한 식탁도, 아벨이 드린 ‘기름’도 결국 이것을 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주시고, 그 선을 무수한 형태의 체어리티와 쓰임으로 살아내게 하시며,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여 다시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이것이 아벨의 제물 안에 들어 있는 천적인 질서이며, 신32:14의 풍성한 표현들이 열어 보여 주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AC.353, 창4:4, 아벨이 드린 ‘기름’은 무엇을 뜻하는가 -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4:4) AC.353 ‘기름’(fat)은 천적인 것 자체를 상징하며, 이것 역시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천적
bygra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