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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8, 창4:8, ‘들’은 왜 교리를 상징하는가? - 신앙의 씨가 뿌려지는 곳

bygracetistory 2026. 9. 5. 11:05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4:8)

 

AC.368

(field) 교리를 상징하며, 따라서 신앙과 체어리티의 교리에 속한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에서, That afieldsignifies doctrine, and consequently whatever belongs to the doctrine of faith and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Jeremiah:

 

들에 있는 나의 산아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재산과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17:3) O my mountain in the field, I will give thy possessions [facultates] and all thy treasures for a spoil. (Jer. 17:3)

 

여기서 (field) 교리를 상징하고, 재산(possessions) 보물(treasures) 신앙의 영적 부요함, 신앙의 교리에 속한 것들을 뜻합니다. 같은 예레미야에서, In this passagefieldsignifies doctrine; “possessionsandtreasuresdenote the spiritual riches of faith, or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doctrine of faith. In the same: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18:14) Shall the snow of Lebanon fail from the rock of my field? (Jer. 18:14)

 

신앙의 교리가 없어진 시온에 관해서는 밭같이 갈아엎어질 (plowed like a field)이라고 선언합니다(26:18; 3:12). It is declared concerning Zion, when destitute of the doctrine of faith, that she shall beplowed like a field.(Jer. 26:18, Micah 3:12)

 

유다의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같이 경작지가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26:18)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3:12)

 

에스겔에서, In Ezekiel: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물 가에 심더니 (17:5) He took of the seed of the land, and set it in a field of sowing, (Ezek. 17:5)

 

이는 교회와 신앙을 다루는 말씀입니다. 교리는 안에 씨가 있기 때문에 (field)이라 합니다. 같은 에스겔에서, treating of the church and of its faith; for doctrine is called afieldfrom the seed in it. In the same:

 

들의 모든 나무가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알리라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17:24) And let all the trees of the field know that I Jehovah bring down the high tree. (Ezek. 17:24)

 

요엘에서, In Joel:

 

10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밭의 소산이 없어졌음이로다 12밭의 모든 나무가 시들었으니 (1:10-12) The field is laid waste, the ground mourneth, for the corn is wasted, the new wine is dried up, the oil languisheth, the husbandmen are ashamed, the harvest of the field is perished, all the trees of the field are withered, (Joel 1:1012)

 

여기서 (field) 교리를, 나무들(trees) 지식을, 농부들(husbandmen) 예배하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시편에서, where thefieldsignifies doctrine, “treesknowledges, andhusbandmenworshipers. In David:

 

밭과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96:12) The field shall exult and all that is therein; then shall all the trees of the forest sing, (Ps. 96:12)

 

여기서 밭이 즐거워할 수도 없고 숲의 나무들이 노래할 수도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사람 안에 있는 것들, 신앙의 지식들을 뜻합니다. 예레미야에서, where it is perfectly evident that the field cannot exult, nor the trees of the forest sing; but things that are in man, which are the knowledges of faith. In Jeremiah:

 

언제까지 땅이 슬퍼하며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12:4)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4)

 

여기에서도 땅이나 들의 채소가 슬퍼할 있는 것이 아니며, 표현들이 황폐함의 상태에 있는 사람 안의 어떤 것들을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이사야에도 있습니다. where it is also evident that neither the land nor the herbs of the field can mourn; but that the expressions relate to something in man while in a state of vastation. A similar passage occurs in Isaiah: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것이며 (55:12) The mountains and the hills shall break forth before you into singing,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all clap their hands. (Isa. 55:12)

 

주님께서도 시대의 완성에 관하여 예언하시면서 신앙의 교리를 (field)이라 하십니다. The Lord also in his prediction concern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calls the doctrine of faith afield:

 

그때에 사람이 밭에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0; 17:36) Then shall two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Matt. 24:40; Luke 17:36)

 

여기서 (field)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신앙의 교리를 뜻합니다. (field) 교리를 상징하므로, 신앙의 씨를 받는 것은 사람이든 교회든 세계든 또한 (field)이라 합니다. where by afieldis meant the doctrine of faith, both true and false. As afieldsignifies doctrine, whoever receives a seed of faith, whether a man, the church, or the world, is also called afield.

 

해설

AC.368은 바로 앞 AC.367에서 남겨 둔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확증합니다. AC.367에서는 체어리티가 신앙의 형제라는 것을 주로 설명했다면, 이제 AC.368에서는 (field)이 교리를 상징하며, 더 구체적으로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교리에 속한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것을 말씀 여러 곳을 통해 보여 줍니다. 이것은 창4:8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 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속뜻에서 분리된 신앙이 교리의 영역에서 체어리티를 소멸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를 상징할까요? AC.368은 그 이유를 매우 간결하게 보여 줍니다. 들은 씨가 뿌려지는 곳입니다. 에스겔의 말씀을 인용한 뒤 스베덴보리는 교리는 안에 씨가 있기 때문에 들이라 한다고 설명합니다. 자연계에서 들이 씨를 받아 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는 곳이라면, 영적으로 교리는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진리가 받아들여지고 자라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교리라는 상응은 단순히 임의로 정해진 상징어가 아니라, 씨와 들의 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창1에서 살펴본 의 의미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는 사람 안에 심기는 씨와 같고, 그 씨가 받아들여져 자랄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AC.368에서는 바로 그 씨가 있는 곳이라는 점 때문에 교리를 이라 합니다. 따라서 교리는 단순히 머릿속에 정리된 신학 명제들의 목록이 아닙니다. 참된 교리는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받아 보존하고, 그것이 신앙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자라도록 하는 밭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레미야의 들의 나의 에 관한 말씀에서 은 교리를 상징하고, ‘재산보물은 신앙의 영적 부요함, 곧 신앙의 교리에 속한 것들을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적인 재산과 보물의 언어가 말씀의 속뜻에서는 사람이 주님에게서 받은 영적인 부요함을 나타낼 수 있음을 봅니다. 교회가 가진 참된 부요함은 건물이나 재산이나 외적인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받은 선과 진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교리 안에 받아들여지고 보존될 때 교리는 영적 보물을 품은 이 됩니다.

 

반대로 교리가 황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의 교리가 없어진 시온이 밭같이 갈아엎어질 이라는 렘26:18과 미3:12을 인용합니다. 들이 씨와 열매로 풍성할 수도 있고 황무지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교리 역시 참된 진리를 품을 수도 있고 진리를 잃어 황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라는 상응 자체가 언제나 좋은 교리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AC.368 마지막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이 밭에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이라는 말씀을 설명하면서, 스베덴보리는 이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신앙의 교리를 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자동으로 참된 것은 아닙니다. 교리는 씨를 품는 들이지만, 어떤 씨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교리가 있는가 하면, 거짓을 신앙의 진리처럼 체계화하는 교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인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AC.362에서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사랑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자기 사랑과 거기서 나온 판타지로 그것을 계속 확증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하나의 교리로 굳어졌습니다. 따라서 가인과 아벨이 에 있었다는 것은 단순한 장소 설명이 아니라,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가 교리의 문제로 들어갔음을 보여 줍니다.

 

요엘의 말씀은 의 황폐함을 더욱 풍성한 상응으로 보여 줍니다. ‘밭이 황무하고’, ‘곡식이 진하여’, ‘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으며’, ‘밭의 모든 나무가 시들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을 교리, ‘나무들을 지식, ‘농부들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설명합니다. 자연적인 농경의 황폐함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교리와 그 안의 지식들이 생명을 잃고 그것을 가지고 예배하는 사람들까지 황폐해지는 상태가 묘사됩니다. 교리가 삶에서 분리되면 단지 몇 가지 신학 명제가 잘못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예배하는가 하는 전체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96:12밭과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노래하리로다라는 말씀과 사55:12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것이며라는 말씀은 말씀의 속뜻이 왜 필요한지를 매우 알기 쉽게 보여 줍니다. 자연적인 밭이 실제로 즐거워할 수 없고 나무가 노래하거나 손뼉 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사람 안에 있는 살아 있는 영적 실재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시편의 경우 그것을 신앙의 지식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씀은 자연계의 사물들을 통하여 인간의 내적인 것과 천국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렘12:4땅이 슬퍼하며 지방의 채소가 마른다는 말씀은 황폐함(vastation)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땅이나 풀이 실제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선과 진리에 속한 것들이 황폐해지는 상태가 자연계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과 그 안의 식물들이 어떤 곳에서는 기뻐하고 노래하며, 다른 곳에서는 마르고 황폐해지는 것은 교리와 지식이 그 안에 무엇을 받아들이고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시대의 완성에 관하여 그때에 사람이 밭에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인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을 신앙의 교리라고 설명하면서 특별히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이라고 덧붙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같은 에 있다는 외적 사실만으로 그들의 내적 상태가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리에 속해 있고 말씀을 알고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영적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것이 체어리티와 결합되어 삶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AC.368 마지막에는 의 의미가 한 단계 더 넓어집니다. 들이 교리를 상징하는 이유가 그 안에 씨가 있기 때문이라면, 신앙의 씨를 받는 것 역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든 교회든 세계든 신앙의 씨를 받는 것은 이라 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상응의 의미가 단순한 단어 대응보다 훨씬 유기적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은 교리를 뜻하지만, 더 넓게는 주님에게서 오는 신앙의 씨가 받아들여지고 자랄 수 있는 수용의 영역까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마음 역시 주님의 말씀이 심기는 하나의 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많은 씨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은 교리를 알고, AC의 많은 아르카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된다면 바로 그 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리를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자기 의와 우월감을 확증하는 수단이 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사랑을 잃게 한다면 진리를 담아야 할 들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장소로 변한 것입니다.

 

반대로 참된 교리는 아벨을 살립니다. 진리가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고, 자기 악을 보게 하며, 이웃을 더 지혜롭게 사랑하고 실제 쓰임을 행하게 한다면 그 교리는 좋은 씨가 자라는 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AC.368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나는 올바른 교리를 알고 있는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교리는 안에서 무엇을 자라게 하고 있는가?까지 나아갑니다. 신앙의 들에서 체어리티가 살아 있는가, 아니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체어리티가 밀려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교리의 궁극적인 쓰임은 그 자체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결합되어 살아 있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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