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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82, 창4:12, ‘피하며 유리하는 자란 누구인가? -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된 신앙’

bygracetistory 2026. 9. 7. 17:19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4:12)

 

AC.382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된다는 것이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유리하는 (wandering) 피하여 달아나는 (fleeing away)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애가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at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signifies not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andering and fleeing away in the Word. As in Jeremiah:

 

13그의 선지자들 죄들과 제사장들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없도다 (4:13, 14) The prophets and priests wander blind in the streets, they have been polluted in blood; the things they cannot do they touch with garments, (Lam. 4:1314)

 

여기서 선지자들(prophets) 가르치는 자들을, 제사장들(priests) 그에 따라 사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하는 (wander blind in the streets) 무엇이 진리고 선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where prophets are those who teach, and priests, those who live accordingly; to wander blind in the streets is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2] 아모스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Amos:

 

7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부분은 비를 얻고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4:7, 8) A part of the field was rained upon, and the part of the field whereupon it rained not withered; so two or three cities shall wander unto one city to drink waters, and shall not be satisfied, (Amos 4:78)

 

여기서 비가 내린 밭의 부분(part of the field on which it rained)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신앙의 교리를 의미하고, 비가 내리지 않은 밭의 부분(part or piece of the field on which it did not rain) 체어리티 없는 신앙의 교리를 의미합니다. 물을 마시려고 유리하는 (wander to drink the waters) 역시 진리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where by the part of the field on which it rained is signified the doctrine of faith from charity; and by the part or piece of the field on which it did not rain, the doctrine of faith without charity. To wander to drink the waters likewise denotes to seek after truth.

 

[3] 호세아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Hosea:

 

16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9:16, 17) Ephraim is smitten, their root is dried up, they shall bear no fruit; my God will cast them away, because they did not hearken unto him; and they shall be wanderers among the nations. (Hos. 9:16, 17)

 

여기서 에브라임(Ephraim) 진리에 대한 이해, 신앙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가 요셉의 장자였기 때문입니다. 말라 버린 뿌리(root which was dried up) 열매를 맺을 없는 체어리티를 의미하고,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떠도는 자들(wanderers among the nations) 무엇이 진리고 선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Ephraim here denotes the understanding of truth, or faith, because he was the firstborn of Joseph; the root which was dried up denotes charity that cannot bear fruit; wanderers among the nations are those who do not know what is true and good.

 

[4]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Jeremiah:

 

28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3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모략과 너를 계책을 세웠음이라 (49:28, 30) Go ye up against Arabia, and devastate the sons of the east. Flee, wander ye exceedingly; the inhabitants of Hazor have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for a habitation. (Jer. 49:28, 30)

 

아라비아(Arabia) 동방의 아들들(sons of the east) 천적인 부요함, 사랑에 속한 것들을 소유함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이 황폐해질 그들은 피하고(flee) 유리한다(wander), 선한 것을 전혀 행하지 않을 피하며 유리하는 자들(fugitives and wanderers) 된다고 말합니다. 하솔 주민들(inhabitants of Hazor), 영적인 부요함인 신앙에 속한 것들을 소유한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하는데, 이는 그들이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signify the possession of celestial riches, or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which, when vastated, are said to flee, and wander, that is, to be fugitives and wanderers, when they do nought of what is good. Of the inhabitants of Hazor, or those who possess spiritual riches, which are those of faith, it is said that they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that is, they perish.

 

[5]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Isaiah:

 

너의 관원들도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22:3) All thy foremost ones wander together, they are bound before the bow, they have fled from far, (Isa. 22:3)

 

이는 환상의 골짜기(valley of vision), 체어리티 없는 신앙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두고 말입니다. 이로부터 뒤의 절에서 그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을 고백하는 자를 피하며 유리하는 (fugitive and a wanderer), 선과 진리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speaking of the valley of vision, or the fantasy that faith is possible without charity. Hence appears the reason why it is said, in a subsequent verse (Isa. 22:14), that he who professes faith that is apart from charity is a fugitive and a wanderer, that is, knows nothing of good and truth.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14)

 

해설

AC.382AC.380에서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확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리한다는 것을 단순히 장소를 옮겨 다니는 것으로 읽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예레미야애가, 아모스, 호세아, 예레미야, 이사야를 차례로 인용하면서 말씀에서 유리함피하여 달아남이 영적으로 방향을 잃은 상태, 특히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용은 가인의 문제, 곧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한 결과와 연결됩니다.

 

첫 번째 인용인 애4:13-14에서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지자들을 가르치는 자들로, ‘제사장들을 그 가르침에 따라 사는 자들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가르침과 삶을 대표하는 두 부류가 모두 맹인처럼 거리를 방황한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 진리이고 선인지 알지 못하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거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데, 영적으로 방향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그 거리에서 방황한다는 이미지는 진리와 선을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이 가인이 유리하는 가 된다는 말과 연결됩니다.

 

두 번째 암4:7-8은 이번 번호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한 밭에는 비가 내리고 다른 밭에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비가 내린 밭을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신앙의 교리, 비가 내리지 않은 밭을 체어리티 없는 신앙의 교리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두 종류의 신앙이 아주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하나는 체어리티에서 생명을 받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입니다. 후자는 비를 받지 못한 밭처럼 말라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물을 마시려고 이 성읍 저 성읍으로 유리하지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물은 여기서 그들이 찾고 있는 진리와 연결됩니다. 즉 체어리티를 잃은 신앙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계속 진리를 찾아 헤매며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것은 AC.379-381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 줍니다. AC.379에서는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단지 지식이라고 했고, AC.380에서는 그런 신앙이 결국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고 했으며, AC.381에서는 그 땅이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가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암4장의 물을 마시려고 유리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사람들은 그 상태를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체어리티와 결합되지 않은 신앙은 지식을 계속 더할 수는 있어도 그 지식이 생명으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참된 영적 만족에 이르지 못합니다.

 

세 번째 호9:16-17에서는 에브라임이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브라임을 진리에 대한 이해, 신앙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체어리티와 연결합니다. 이것은 앞의 땅이 효력을 내지 않는다는 설명과 거의 같은 구조입니다. 뿌리가 마르면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에서 체어리티라는 생명이 사라지면 신앙도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떠도는 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은 남아 있다고 주장하지만 무엇이 진리고 선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렘49장의 아라비아동방의 아들들은 조금 더 깊은 층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들을 천적인 부요함’, 곧 사랑에 속한 것들을 소유한 상태와 연결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황폐해지면 피하고 유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선한 것을 전혀 행하지 않는 과 연결합니다. 이것은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상태가 단순한 지적 혼란이 아니라 삶의 선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선을 행하는 삶과 분리된 신앙은 결국 무엇이 선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게 됩니다. ‘하솔 주민들이 가진 영적인 부요함, 곧 신앙에 속한 것들 역시 결국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즉 멸망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영적 지식은 스스로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사22장의 환상의 골짜기는 이 모든 설명을 가인의 핵심 문제에 직접 연결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체어리티 없는 신앙이 가능하다는 환상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fantasy라는 말이 매우 강합니다.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떼어 놓고도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영적인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교리가 걸어온 길입니다. 신앙을 체어리티와 구별하는 데서 시작하여 둘을 분리하고, 신앙을 체어리티 위에 놓으며,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신앙이 더 순수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피하며 유리하는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설이 드러납니다. 가인은 신앙을 지키려다가 신앙의 방향을 잃었습니다. 체어리티를 제거하면 진리만 더욱 순수하게 남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진리를 분별할 능력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선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은 선이며, 신앙에 생명을 주는 것은 체어리티입니다. 목적을 잃은 진리는 지식으로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살아 있는 진리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물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길을 걷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됩니다.

 

그렇다고 체어리티가 있으면 교리적 진리를 몰라도 된다는 반대 극단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AC.382의 결론은 진리를 버리고 선만 붙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과 진리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어리티는 진리를 필요로 합니다. 무엇이 실제로 이웃에게 선한 것인지 분별하려면 진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진리는 체어리티를 필요로 합니다. 진리가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체어리티가 그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문제는 이 둘을 구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한 데 있었습니다.

 

이번 번호의 여러 성경 인용을 하나씩 별개의 교리로 떼어 읽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다섯 인용을 가져온 목적은 하나입니다. 말씀에서 방황하고’, ‘유리하고’, ‘피하여 달아나는이미지들이 영적인 방향 상실과 연결되며, 그 방향 상실은 선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애가에서는 맹인처럼 방황하고, 아모스에서는 물을 찾아 유리하며, 호세아에서는 열매 없는 에브라임이 여러 나라 가운데 떠돌고, 예레미야에서는 사랑과 신앙의 부요함을 잃은 자들이 피하고 유리하며, 이사야에서는 체어리티 없는 신앙이라는 환상속에서 사람들이 도망합니다. 서로 다른 장면이지만 모두 하나의 영적 상태를 비춥니다.

 

따라서 창4:12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은 단순히 가인에게 내려진 외적인 유랑 형벌이 아닙니다. 속뜻에서는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신앙이 결국 자기 안에서 선과 진리의 방향을 잃게 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가인의 교리가 맞이한 가장 깊은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앙만을 높이려 했는데 결국 신앙 자체가 무엇이 참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체어리티를 버릴 때 순수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체어리티와 결합될 때 비로소 살아 있으며 선과 진리를 분별하는 올바른 방향을 얻게 됩니다.

 

 

 

AC.381, 창4:12, ‘체어리티 없는 신앙은 왜 결실이 없는가?’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AC.381‘땅을 가는 것’(till the ground)이 이 분열 또는 이단을 배양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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