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4 심화 1, ‘왜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함께 놓았을까?’
SW.4 심화
1. ‘왜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함께 놓았을까?’
레위기 2장의 소제를 가장 짧게 표현한다면 ‘고운 가루 + 기름 + 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함께 드리도록 하셨을까요? 단순히 향기롭고 좋은 제물을 만들기 위한 조리법이었을까요? 스베덴보리는 이 세 가지의 결합 속에서 소제의 핵심적인 영적 질서를 봅니다.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757-1759, AE) 324(계5:8)은 놀랍게도 레2:1-2를 직접 인용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고운 가루가 진정한 진리를 의미하고, 기름은 천적 사랑의 선, 유향은 영적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제의 세 재료는 단순한 음식 재료가 아니라 ‘진리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함께 있는 예배를 보여 줍니다.
고운 가루부터 살펴보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9995(출29:2)는 고운 가루를 ‘선에서 나오는 진리’라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신적 선에서 신적 진리가 나오며, 인간 안에서도 참된 진리는 결국 선을 섬기고 선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고운 가루는 단순히 많이 배운 교리 지식이 아닙니다. 삶을 선하게 만드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고운 가루만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기름은 사랑의 선을 표상합니다. 진리에 사랑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확한 진리라도 사랑과 분리되면 사람을 살리는 진리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한 진리,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진리, 지적 우월감을 위한 진리는 고운 가루만 있고 기름이 없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될 때 그 본래의 목적을 이룹니다.
그리고 거기에 유향이 더해집니다. 유향은 영적 사랑의 선과 관계합니다. 특별히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이웃 사랑과 체어리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제 안에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질서가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사랑의 선이 오고, 그 선에서 진리가 나오며, 그 사랑과 진리가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을 점검하는 매우 좋은 기준이 됩니다. ‘나는 진리를 알고 있는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에는 기름이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향이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진리가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더 온유하고 정직하며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는 신앙과 사랑과 체어리티를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신앙의 진리가 사랑에서 분리되면 메마른 지식이 되기 쉽고, 사랑이라고 하면서 진리가 없으면 무엇이 참으로 선한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주님 사랑을 말하면서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없다면 그 사랑 역시 삶에서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이 한 소제 안에 함께 놓이는 것은 그래서 매우 아름다운 상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사람’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진리가 사랑과 결합되고,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로 흘러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고운 가루와 기름과 유향은 하나의 소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사랑과 삶도 하나가 됩니다. (SW.4 레2 심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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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4, 레2,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 선과 진리가 하나 되어 삶의 예물이 되기까지’
※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읽는 말씀’은 주님의 말씀 위에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덧붙이거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보다 더 깊은 뜻을 스베덴보리에게서 찾고자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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