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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4 심화 2, ‘왜 누룩과 꿀은 금하고 소금은 반드시 넣으라 하셨을까?’

bygracetistory 2026. 9. 15. 20:08

SW.4 심화

2. 누룩과 꿀은 금하고 소금은 반드시 넣으라 하셨을까?’

 

레위기 2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규정 가운데 하나는 누룩과 꿀은 제단에서 불사르지 못하게 하면서 소금은 모든 소제에 반드시 넣도록 한 것입니다. 특히 꿀까지 금지했다는 것이 뜻밖입니다. 성경에서 꿀은 흔히 좋은 것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규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137(29:40)은 레2:11-13의 규정을 직접 다루면서 누룩은 악에서 나오는 거짓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악이 먼저 있고 그 악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제에 누룩을 넣지 않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예배 안에 악에서 나온 거짓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꿀은 조금 다릅니다. 꿀은 그 자체로 언제나 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꿀이 자연적 인간의 즐거움, 외적인 즐거움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세상 사랑과 자기 사랑의 즐거움에 오염되어 거룩한 것과 섞이는 경우입니다. AC.5650(43:11)은 바로 레2:11을 인용하면서 꿀이 세상에서 감각을 통해 오는 외적 즐거움과 관계하기 때문에 소제에서 금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섬세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기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에게서 오는 선에는 깊은 기쁨이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무엇 때문에 기쁜가?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 기쁜 것인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서 기쁜 것인지, 종교적인 일을 통해 명예나 영향력을 얻어서 기쁜 것인지, 아니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이웃에게 실제 선이 이루어져서 기쁜 것인지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예배와 선행이라도 그 안에 이 섞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고 행하는 선, 자기 의를 즐기는 봉사, 인정받지 못하면 금세 낙심하거나 분노하는 헌신이라면 외적인 즐거움이 예배의 동기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을 수 있습니다. 2는 그런 것을 제단의 불에 올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룩과 꿀을 빼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AC.9207(22:22)은 레2:13을 직접 인용하면서 소금이 진리가 선을 갈망하고 선이 진리를 갈망하는 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부릅니다. 언약은 결합이고, 소금은 그 결합을 향한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선과 결합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한다는 진리를 참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진리는 실제 용서의 선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실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참된 선은 진리를 원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엇이 상대방에게 실제로 유익한지 알지 못한다면 선한 의도만으로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은 진리를 통해 형태와 방향을 얻습니다.

 

그래서 소금은 단순히 변하지 않게 보존한다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서 소금의 핵심은 결합을 향한 갈망입니다. 진리와 선이 서로를 바라보며 하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예물에 있어야 합니다.

 

2의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놀라운 영적 원리가 보입니다. ‘누룩은 빼라. 꿀도 제단의 불에 올리지 말라. 그러나 소금은 절대로 빼지 말라.악에서 나오는 거짓은 버리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물든 외적 즐거움도 예배의 동기로 삼지 말되, 선과 진리가 결합하려는 갈망만은 절대로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와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 신앙에는 어떤 누룩이 들어 있는가?’, ‘내가 주님을 섬기면서 은밀히 맛보고 싶은 꿀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소금이 있는가? 내가 아는 진리가 실제 선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가?

 

주님께서 찾으시는 소제는 겉으로 화려한 소제가 아닙니다. 거짓이 섞이지 않고, 자기 사랑의 즐거움이 지배하지 않으며, 선과 진리가 서로 결합하기를 갈망하는 소제입니다. 그래서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는 짧은 말씀은 우리의 모든 예배와 삶을 관통하는 명령이 됩니다. (SW.4 2 심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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