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레6.심화3, ‘왜 번제의 재까지 거룩하게 다루어야 했을까?’
SW.레6.심화
3. ‘왜 번제의 재까지 거룩하게 다루어야 했을까?’
번제가 모두 타고 나면 남는 것은 재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제사는 끝났고 재는 치워야 할 폐기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레6은 그 재를 처리하는 일까지 매우 세밀하게 규정합니다.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과 세마포 속바지를 입고 재를 제단 곁에 두었다가, 다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갑니다.
여기서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마포의 의미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9959(출28:42)는 세마포를 외적 진리, 곧 자연적 진리와 연결하면서 바로 레6:10-11의 이 장면을 직접 인용합니다. 제사장이 재를 처리할 때조차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던 것은 이 마지막 외적 처리까지 진리의 질서 안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본문은 재를 단순히 ‘진영 밖’에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제물은 이미 불에 완전히 살라졌지만 그 결과물까지 아무렇게나 취급되지 않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남은 것에도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확보한 스베덴보리 원전 가운데 레6의 ‘재’ 자체를 직접적으로 세밀하게 풀이하는 강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는 정확히 무엇을 상응한다’고 하나의 공식으로 못 박지는 않겠습니다. 오히려 확실한 본문의 구조를 붙드는 편이 좋습니다. 거룩한 제사의 마지막 결과까지 정결한 질서 속에서 처리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에도 좋은 통찰을 줍니다. 어떤 악과의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그 경험 전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시험에서 건져 내셨다면 그 과정에서 배운 진리와 겸손, 자기 인식은 이후의 삶에 남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악 자체를 계속 붙잡고 살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끝난 것은 끝난 자리로 옮겨야 합니다.
특히 ‘다른 옷을 입고’ 진영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과 그 결과를 밖으로 옮기는 일이 서로 다른 외적 질서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모든 영적 경험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 상태에 맞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의 재는 적어도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주님께서 이미 태워 없애신 것을 나는 아직 제단 위에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회개한 죄를 끝없이 되씹고, 이미 지나간 실패를 자기 정체성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정결의 완성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끝내신 것은 정결한 질서 가운데 제자리로 옮겨 놓고, 제단에서는 다시 새로운 불과 새로운 번제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SW.레6 심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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