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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레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bygracetistory 2026. 9. 19. 21:44

SWC.1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가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육지의 모든 짐승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3모든 짐승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4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5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6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7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9물에 있는 모든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10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11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고기를 먹지 말고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12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 13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14말똥가리와 말똥가리 종류와 15까마귀 종류와 16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7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18 올빼미와 사다새와 너새와 19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 20날개가 있고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로되 21다만 날개가 있고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22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팥중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23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 24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5 주검을 옮기는 모든 자는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26굽이 갈라진 모든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27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네게 부정하니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8 주검을 옮기는 자는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29땅에 기는 길짐승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두더지와 쥐와 도마뱀 종류와 30도마뱀붙이와 육지 악어와 도마뱀과 사막 도마뱀과 카멜레온이라 31모든 기는 이것들은 네게 부정하니 주검을 만지는 모든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32이런 어떤 것의 주검이 나무 그릇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자루에든지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33그것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속에 있는 것이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릇을 깨뜨리라 34먹을 만한 축축한 식물이 거기 담겼으면 부정하여질 것이요 그같은 그릇에 담긴 마실 것도 부정할 것이며 35이런 것의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이 모두 부정하여지리니 화덕이든지 화로이든지 깨뜨려버리라 이것이 부정하여져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 되리라 36샘물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는 부정하여지지 아니하되 주검에 닿는 것은 모두 부정하여질 것이요 37이것들의 주검이 심을 종자에 떨어지면 그것이 정하거니와 38만일 종자에 물이 묻었을 때에 그것이 위에 떨어지면 너희에게 부정하리라 39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40그것을 먹는 자는 옷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의 옷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41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42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것들은 가증함이니라 43너희는 기는 기어다니는 때문에 자기를 가증하게 되게 하지 말며 또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하지 말라 44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46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에 대한 규례니 47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11)

 

해설

레위기 11장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짐승을 먹을 수 있고 어떤 짐승은 먹을 수 없는지, 어떤 물고기와 새와 곤충과 길짐승이 정하고 부정한지, 그 주검을 만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길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장의 마지막에 이 모든 규례의 목적이 밝혀집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리고 다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따라서 레11의 중심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거룩함이며, 그 거룩함을 위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음식법의 기본 원리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757-1759, AE) 650(11:7)은 레11의 규례를 직접 언급하면서, 당시 교회가 표상교회였기 때문에 짐승에 관한 법들도 모두 영적인 것을 표상했다고 설명합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은 선을, 먹을 수 없는 짐승은 악을 의미했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719(7:2)도 정한 짐승은 선한 애정을, 부정한 짐승은 악한 애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동물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악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동물이 가진 성질이 인간 안의 서로 다른 애정과 욕망을 표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먹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은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일부가 되듯, 말씀에서 먹는 것은 어떤 선과 진리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삼는 것, 곧 삶에 결합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레11은 단순히 어떤 동물을 먹어도 되는가?를 가르치는 장이 아닙니다. 거듭남의 관점에서는 나는 무엇을 안으로 받아들여 삶의 일부로 만들고 있는가?를 묻는 장입니다. 인간은 날마다 수많은 생각과 지식과 욕망과 즐거움에 접촉하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절하면서 자기 내면을 형성합니다.

 

3절로 8절에서는 육지 짐승의 두 가지 기준이 제시됩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동시에 새김질해야 합니다. 낙타와 사반과 토끼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고,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하지 않으므로 부정합니다. 여기에서 새김질은 정확히 무엇이고 갈라진 굽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기지만, 스베덴보리가 레11의 이 두 조건을 각각 특정한 영적 의미로 직접 해설한 충분히 강한 원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새김질은 말씀 묵상, 굽은 행함처럼 그럴듯한 대응을 만들어 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어느 한 조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전체 가르침에서도 선과 진리, 신앙과 체어리티,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분리되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레11의 두 조건 역시 적어도 한쪽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영적 질서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세부 대응은 보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9절로 19절에서는 물속 생물과 새로 범위가 넓어집니다. 물속 생물 가운데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만 먹을 수 있고, 이어 독수리와 솔개와 까마귀와 올빼미 등 먹지 못할 새들이 열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자연적 인간 안의 지식과 기억지식에 연결되고, 새는 생각과 지적인 것들에 연결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지식과 생각 역시 분별되어야 한다는 큰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이것, 비늘은 저것’, 또는 레11에 열거된 새 하나하나를 특정한 악이나 거짓에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은 직접 원전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상응을 만들어 내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지식이 영적 양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절로 23절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예외가 나옵니다. 날개가 있으면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일반적으로 먹지 못하지만, 발 위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메뚜기 종류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의 직접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AE.543(9:3)은 바로 레11:20-22를 인용하면서, ‘다리는 영적 선과 결합된 자연적 선을, ‘은 그 선에서 나오는 자연적 진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선에서 나온 진리는 인간에게 받아들여지고 결합되어야 하므로 이런 곤충은 먹도록 허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것이라고 해서 그 자체로 낮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삶이 영적 선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것 역시 거듭난 인간의 삶에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24절 이후에는 먹음뿐 아니라 접촉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지거나 옮기면 저녁까지 부정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옷을 빨아야 합니다. AC.994(9:3)는 레11:27, 29-33의 기는 것들을 직접 언급하면서, ‘기는 이 좋은 의미에서는 선한 애정에서 나오는 자연적 즐거움을, 반대 의미에서는 proprium과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더러운 즐거움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당시 표상교회에서는 그러한 것을 표상하는 부정한 기는 것과 접촉하는 것까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적 즐거움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즐거움 안에 어떤 애정이 들어 있는가입니다. 음식과 휴식과 아름다움과 몸의 감각 같은 자연적인 즐거움도 선한 쓰임과 체어리티에 연결되면 좋은 것이지만, 자기애와 세상 사랑에 지배되면 인간을 가장 낮은 감각적인 것에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32절로 40절에서는 부정한 주검이 그릇이나 의복이나 음식과 물에 접촉했을 때의 규례가 이어집니다. 어떤 것은 물에 담가 씻지만 질그릇은 깨뜨려야 하고, 샘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는 부정해지지 않으며, 마른 종자와 물 묻은 종자의 경우도 다르게 취급됩니다. 이런 세부 규례 하나하나에도 표상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스베덴보리의 직접적인 해설이 확보되지 않은 부분까지 세밀한 상응으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체 계열에서는 한 가지가 분명합니다. 부정한 것이 인간의 삶에 접촉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씻고, 분리하고, 때로는 버리는 정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악과 거짓의 영향을 제거하는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41절로 43절에서는 다시 기는 이 강조됩니다.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 또는 여러 발로 기어 다니는 것을 먹지 말라고 하시며, ‘그것 때문에 자기를 가증하게 되게 하지 말며 또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AC.994가 설명하듯 악한 의미의 기는 것은 proprium에서 나오는 더러운 감각적 즐거움과 욕망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문제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이 삶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선과 진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듭남은 자연적인 것을 파괴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 영적인 것의 질서 아래 놓이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44절과 45절에서 이 모든 규례의 이유가 마침내 밝혀집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인간은 자기 힘으로 거룩함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거룩함은 오직 주님에게서 옵니다. 인간이 거룩해진다는 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선과 진리에 반대되는 악과 거짓을 주님의 도움으로 거절함으로써 주님의 것이 자기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11먹으라먹지 말라는 결국 거룩함의 두 방향입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반대되는 것은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45절은 이 거룩함을 출애굽과 연결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여호와라.이스라엘이 정결 규례를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에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고, 그 후 구원받은 백성에게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거듭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정결해져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인간을 악과 거짓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 후 선과 악을 분별하며 자유롭게 선을 선택하도록 계속 인도하십니다.

 

마지막 47절은 그래서 레11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이것은 바로 앞 레10과도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10에서 제사장에게 요구된 것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는 이었습니다. 그런데 레11에서는 그 분별이 제사장과 성소를 넘어 백성의 식탁과 손과 그릇과 일상생활 전체로 내려옵니다. 거룩함은 제단 앞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레11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가장 깊은 질문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입니다. 어떤 애정을 즐기고, 어떤 생각을 반복하며, 어떤 지식을 자기 것으로 삼고, 어떤 감각적 즐거움을 사랑하는지가 결국 우리의 내면을 형성합니다. 거듭남은 모든 것을 무차별하게 받아들이는 삶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는 받아들이고 악과 거짓은 거절하는 분별의 삶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의 길고 세밀한 음식법은 결국 이 한 말씀을 인간의 가장 평범한 일상까지 내려보낸 것입니다. (SWC.11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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