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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06, 창4:19, ‘라멕은 왜 신앙의 황폐를 의미하는가? - 사람은 신앙을, 어린아이는 체어리티를 뜻합니다’

bygracetistory 2026. 9. 20. 20:52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4:19)

 

AC.406

라멕(Lamech) 황폐(vastation), 신앙이 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뒤에 나오는 23절과 24절로부터 분명합니다. 거기서는 그가 상처를 위하여 사람을 죽였고, 상함을 위하여 어린아이를 죽였다(slew a man to his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his hurt)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람(man) 신앙을, 어린아이(little one), 어린 자녀(little child) 체어리티를 의미합니다. That byLamechis signified vastation, or that there was no faith,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verses (2324), in which it is said that heslew a man to his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his hurt”; for there, by amanis meant faith, and by alittle oneorlittle child, charity.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4:23, 24)

 

해설

AC.406은 앞의 AC.405에서 라멕이 황폐’, 곧 신앙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 근거를 밝혀 줍니다. 그 근거는 라멕의 이름 자체가 아니라 뒤에 나오는 창4:23-24의 라멕의 노래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노래에서 라멕이 사람을 죽였고 어린아이를 죽였다고 한 말씀을 인용한 뒤, ‘사람은 신앙을, ‘어린아이는 체어리티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라멕의 황폐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인의 계보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가인은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한 상태를 표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분리된 신앙이라도 아직 보존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AC.392-396에서 주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신 것은 그 신앙이 훗날 체어리티를 받아들이는 데 쓰일 수 있도록 구별하여 보존하시는 섭리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멕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AC.405에서는 신앙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했고, 이번 번호에서는 그 이유를 신앙과 체어리티의 소멸을 나타내는 라멕의 노래에서 찾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어린아이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번 문맥에서 사람을 신앙으로, ‘어린아이를 체어리티로 풀이합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을 죽였다는 표현은 단순히 같은 의미를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체어리티라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가 모두 소멸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앞서 가인에게서는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지만, 라멕에게서는 신앙마저 남아 있지 않은 황폐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신앙을, ‘어린아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체어리티를 뜻한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번 번호에서 밝히는 것은 라멕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 표현들의 속뜻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말씀의 문맥과 그것이 다루는 영적 상태에 따라 구체적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해석은 창4:23-24의 문맥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죽였다는 표현을 실제 살인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만 읽으면 스베덴보리가 밝히려는 영적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그는 앞의 AC.403에서 창세기 이 부분이 영적인 것들을 역사 형식 아래 배열한 표상적 서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라멕의 노래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읽습니다. 여기서 신앙과 체어리티를 죽였다는 것은 그 계열의 교회 안에서 신앙과 체어리티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게 된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다만 상처상함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이번 번호에서 미리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라멕의 노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뒤의 번호에서 살펴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 대목에서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신앙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어 홀로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체어리티와 결합될 때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따라서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일은 단순히 신앙에 덧붙여야 할 한 가지 덕목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생명을 얻는 관계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라멕에게서 신앙마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설명은 이러한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를 앞의 AC.405와 함께 읽을 때에는 또 하나의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라멕은 신앙의 황폐를 의미하지만, 그의 두 아내는 새 교회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라멕에게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소멸했다는 사실이 곧 모든 사람에게서 선과 진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인에게서 이어진 교리적 계열의 황폐와 새 교회의 출현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의 황폐가 곧 주님의 모든 교회 역사의 종말은 아닌 것입니다.

 

결국 AC.406은 라멕의 의미를 뒤에 나오는 말씀으로 확인하는 번호입니다. ‘사람은 신앙을, ‘어린아이는 체어리티를 의미하며, 라멕이 이들을 죽였다는 말씀은 그 계열에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소멸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가인에게서 시작된 신앙과 체어리티의 분리가 라멕에게서는 신앙마저 남아 있지 않은 황폐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새 교회의 출현도 예고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멕에게서 이전 교회의 황폐를 보면서도, 그 이후의 새로운 교회를 위한 주님의 섭리가 계속되고 있음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AC.406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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