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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08 심화 1, ‘진리를 모르면 모독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은가?’

bygracetistory 2026. 9. 20. 21:04

AC.408 심화

1. 진리를 모르면 모독할 없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은가?

 

AC.408-410을 읽으면 매우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의 거룩한 것들을 알면서 그것들을 인정하고 믿은 뒤 모독적인 것들과 뒤섞는 상태를 매우 위험하게 설명하는 한편, 그것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모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진리를 배우지 않는 것이 안전한 것 아닐까요? 주님과 말씀에 관하여 적게 알수록 모독할 위험도 줄어든다면, 무지가 오히려 유리한 상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C.408의 요점은 무지가 좋은 상태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모독이 단순한 무지나 불신앙과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거룩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자기 안에서 거룩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가 다시 악과 거짓에 결합시키는 방식의 모독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반면 사람이 진리를 알고 인정하며 그것을 신앙의 거룩한 것으로 받아들인 뒤, 그것을 의도적으로 그 반대되는 악과 거짓에 결합시키면 서로 함께 있을 수 없는 것들이 그의 내면에서 뒤섞입니다.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모르는 사람알면서 거부하는 사람사이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AC.410은 황폐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알면서도 알려 하지 않고, 보면서도 보려 하지 않는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무지 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후자의 사람에게 진리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완성된 영적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진리를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이미 알고 보면서도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상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교회가 때때로 이전 교회의 중심이 아니라 이방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난다고 설명합니까? AC.408-410의 문맥에서는 이미 계시된 거룩한 것들을 알고도 계속 거부하고 뒤섞어 온 곳보다, 아직 그것들을 알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민족이나 종교 집단 자체가 다른 집단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것은 교회의 상태입니다. 어느 곳이든 진리를 알고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상태가 될 수 있고, 어느 곳이든 아직 알지 못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가르침을 복음을 듣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거나 진리를 배우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유리하다는 결론으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고 거듭나게 하기 위해 주어집니다. 문제는 진리를 아는 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인 뒤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은 위험 자체가 아니라 큰 선물이며, 동시에 그 진리를 삶으로 받아들이라는 부르심입니다. 위험은 빛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받아들여 빛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어둠과 결합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408새로운 아침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지를 보존하기 위해 새 교회를 일으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빛을 주시기 위해 일으키십니다. 이전 상태에서는 거룩한 것과 모독적인 것이 뒤섞여 새로운 빛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 상태가 끝에 이르면 아직 그렇게 뒤섞이지 않은 곳에서 다시 진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지는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출발 상태일 뿐입니다. 목적은 결국 진리를 알고, 인정하고, 믿으며, 그것을 체어리티의 삶과 결합하는 데 있습니다.

 

목회적으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별입니다. 우리는 모르면 책임이 적으니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빛을 주실 때 그 빛을 감사히 받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동시에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을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그가 아직 알지 못한다는 사실과 진리를 알고도 거부한다는 것은 같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AC.408-410은 주님께서 인간의 상태를 얼마나 세밀하게 구별하시며, 황폐 가운데서도 다시 진리를 받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하여 새로운 아침을 여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AC.408 심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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