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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7, 창4:21, ‘유발과 수금과 퉁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C.417-420)

bygracetistory 2026. 9. 21. 20:23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21)

 

AC.417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his brothers name was Jubal)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의미합니다.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his brothers name was Jubalis signified the doctrine of the spiritual things of the same church; by the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해설

AC.417은 야발에 이어 그의 아우 유발의 속뜻을 밝힙니다. 앞의 AC.412-416에서 야발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의미했습니다. 이제 유발은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의미합니다. 두 형제는 서로 무관한 두 교회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구별되는 두 종류의 교리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같은 교회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야발과 유발은 모두 가인의 계보에 속하며, 스베덴보리는 두 사람을 설명하면서 사랑에 관한 교리와 신앙에 관한 교리를 구별합니다. 야발에게서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들이 강조되고, 유발에게서는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이 강조됩니다. 따라서 이 구별은 사랑과 신앙을 서로 대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에 속한 교리들이 각각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유발에 관한 문자적 기록은 그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었다고 말합니다(4:21). 앞의 야발이 장막과 가축에 관한 표현으로 소개되었다면, 유발은 악기에 관한 표현으로 소개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단순한 직업이나 기술의 차이로만 읽지 않습니다. 야발의 장막과 가축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을 나타내듯이, 유발의 수금과 퉁소는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나타냅니다.

 

이때 영적인 것들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알고 있거나 그것이 참이라고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신앙에는 진리뿐 아니라 선도 함께 언급됩니다. AC.417이 유발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신앙의 진리들이라고만 하지 않고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이라고 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번호는 그 진리들과 선들이 각각 어떤 세부적인 내용을 가리키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는 이어지는 번호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는 표현을 유발이 인류 최초의 악기 연주자였다는 역사적 주장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앞의 AC.416에서 스베덴보리는 야발이 최초의 목축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들어, ‘조상이라는 표현의 속뜻에 주목하도록 했습니다. 유발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이 표현이 어떤 교리를 나타내는지를 살피는 것이 이번 해설의 중심입니다. 그렇다고 악기의 구조나 소리의 성질에 관한 세부적인 상응을 이 번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야발과 유발을 함께 읽으면 두 형제의 관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야발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유발은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나타냅니다. 이 구별을 통해 우리는 말씀에서 사랑에 관한 것과 신앙에 관한 것이 각각 다른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유발에게도 신앙의 선들이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은, 신앙을 선과 무관한 지식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AC.417은 유발의 이름과 악기에 관한 기록을 통해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밝힙니다. 야발의 장막과 가축에 이어 유발의 수금과 퉁소를 읽는 우리는, 말씀의 서로 다른 표현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신앙의 진리들 및 선들을 어떻게 구별하여 나타내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이 번호에서는 그 기본적인 구별을 분명히 붙들고, 수금과 퉁소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AC.417 해설)

 

 

 

AC.418, 창4:21, ‘수금과 퉁소는 왜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가?’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8앞 절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지만, 이 절은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다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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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6, 창4:20, ‘야발이 최초의 목축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창4:20) AC.416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이 의미된다는 사실은, 야발이 ‘장막과 가축의 우리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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