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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1, 창4:22, ‘두발가인과 나아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C.421-426)

bygracetistory 2026. 9. 22. 14:13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2)

 

AC.421

앞서 말했듯이, 씰라(Zillah)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놋과 쇠로 온갖 기구를 만드는 자의 스승(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두발가인(Tubal-Cain)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brass) 자연적 선을, (iron) 자연적 진리를 뜻합니다. 두발가인의 누이(the sister of Tubal-Cain) 나아마(Naamah) 그와 비슷한 교회,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의미합니다. ByZillahis signified, as previously stated, the mother of the natural things of the new church; by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brassdenoting natural good, andironnatural truth. ByNaamah, the sister of Tubal-Cainis signified a similar church, or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outside of that church.

 

해설

AC.421은 창4:22에 등장하는 씰라와 두발가인, 나아마의 속뜻을 설명합니다. 앞서 야발과 유발을 통해 사랑의 천적인 것들과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자연적인 것들로 시선이 옮겨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두발가인을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로 해석하고, 놋과 쇠가 각각 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를 나타낸다고 밝힙니다. 이로써 라멕의 자손들에 관한 기록은 교회의 서로 다른 측면을 설명하는 흐름을 이어갑니다.

 

먼저 씰라는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자연적인 것들은 앞서 다룬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에 비해 사람의 외적인 삶과 관련된 차원을 가리킵니다. 다만 자연적이라는 말이 곧 악하거나 영적인 것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번 번호에서 자연적인 것들 안에도 선과 진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것을 단순히 극복하거나 버려야 할 대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두발가인놋과 쇠로 온갖 기구를 만드는 자의 스승이라는 설명과 함께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를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발가인을 단순히 금속을 다루는 기술자로 풀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창세기의 문자적 기록은 그가 놋과 쇠를 다루는 기술과 관련된 인물임을 말하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기록의 속뜻에서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읽어 냅니다. ‘스승이라는 표현 역시 이번 번호의 해석이 단순한 기술이나 물건이 아니라 교리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번 번호는 두 개념의 구체적인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놋과 쇠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만 밝힙니다. 따라서 자연적 선을 특정한 선행 하나로, 자연적 진리를 특정한 지식 하나로 좁혀서는 안 됩니다. 우선 자연적인 차원에도 선과 진리의 구별이 있으며, 두발가인이 그 둘에 관한 교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 자연적 선을, ‘는 자연적 진리를 뜻합니다. 두 금속은 문자적으로는 기구를 만드는 재료이지만, 속뜻에서는 자연적인 차원의 선과 진리를 구별하여 나타냅니다. 앞의 AC.419에서 수금과 퉁소가 각각 영적 진리와 영적 선을 나타냈던 것처럼, 이번 번호에서는 놋과 쇠가 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악기와 금속의 의미를 하나의 기계적인 대응표로 만들기보다는, 각각의 말씀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밝힌 뜻을 따라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아마는 두발가인의 누이로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나아마가 그와 비슷한 교회,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교회 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두발가인과 나아마가 모두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련되지만, 스베덴보리는 둘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나아마는 앞서 말한 교회 밖에 있는, 그와 비슷한 교회 또는 교리를 나타냅니다. 다만 이번 번호만으로 그 교회가 역사적으로 어떤 집단인지, 왜 교회 밖에 있다고 표현하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교회의 삶이 내적인 사랑과 신앙에 관한 가르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연적인 차원에도 선과 진리가 있으며, 그것들에 관한 교리도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이번 번호가 자연적인 선과 진리만으로 거듭남이 완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라멕의 자손들에 관한 기록이 교회의 어떤 측면을 나타내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둡니다.

 

결국 AC.421의 핵심은 두발가인이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교리를, 놋과 쇠가 각각 자연적 선과 자연적 진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씰라는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하고, 나아마는 그 교회 밖에 있는 비슷한 교회 또는 교리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짧은 번호를 통해 자연적인 것들 역시 교회의 선과 진리에 관한 설명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AC.421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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