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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4 심화 1,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어떻게 거짓을 가르칠 수 있는가?’

bygracetistory 2026. 9. 22. 14:57

AC.424 심화

1.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어떻게 거짓을 가르칠 있는가?’

 

10:8-9에서 우상은 다시스의 은과 우바스의 금, 청색 실과 옷으로 화려하게 꾸며집니다. 스베덴보리는 AC.424에서 이 장면을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을 꾸미기 위해 말씀에서 여러 내용을 모아들이는 상태로 풀이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의 내용을 가져와 자기 가르침을 꾸민다는 사실입니다.

 

이 설명은 말씀을 인용하는 행위와 말씀의 참된 뜻을 가르치는 일을 구별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구절을 많이 알고 정확하게 인용하더라도, 그 구절들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모아 놓는다면 그 인용만으로 가르침의 참됨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예레미야의 우상 제작을 설명하면서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방식입니다. 먼저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있고, 그다음에 그것을 꾸미기 위해 말씀의 내용들을 모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새긴 우상과 예레미야의 헛된 것들의 교훈은 이 문제를 함께 보여 줍니다. 이사야에서는 사람이 자기 상상으로 거짓을 만들어 진리처럼 보이게 가르칩니다. 예레미야에서는 그 거짓을 꾸미기 위해 말씀에서 여러 내용을 모아들입니다. 두 구절 모두 거짓이 단순히 아무런 근거 없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장식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AC.424는 모든 잘못된 해석이 반드시 의도적인 속임수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직접 설명하는 대상은 자기 생각으로 만든 거짓을 꾸미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금과 은의 의미도 이 문맥에서 살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금이 우상을 선처럼 보이게 하고, 은이 진리처럼 보이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금과 은이 귀한 재료라는 사실이 우상을 참된 것으로 바꾸어 주지는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선하고 참된 말씀의 표현을 가져와 장식한다고 해서, 그 표현들로 꾸민 가르침의 중심까지 저절로 참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의 구절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는 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점은 AC 번역과 해설을 작성하는 우리의 작업에도 적용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해석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관련 구절을 찾아 덧붙이는 것과, 해당 구절의 문맥 및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밝힌 뜻을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본문이 직접 말한 내용, 관련 저작에서 확인한 내용,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생각해 낸 적용을 구별하면 말씀을 자기 생각의 장식으로 사용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해석의 자유를 없애자는 뜻이 아니라, 해석의 근거를 분명히 하자는 뜻입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우상 제작 장면은 성경 구절이 들어 있으니 참된 가르침이다라는 판단이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지적하는 문제는 말씀의 내용을 가져와 이미 만들어 놓은 거짓을 꾸미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인용할 때 그 구절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살피고, 자신의 생각과 본문의 뜻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AC.424 심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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