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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0 심화 2, ‘젖먹이·유아·어린아이, 사랑의 세 단계는 무엇을 구별하는가?’

bygracetistory 2026. 9. 23. 09:03

AC.430 심화

2. 젖먹이·유아·어린아이, 사랑의 단계는 무엇을 구별하는가?’

 

AC.430에서 스베덴보리는 순진무구에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에서는 그 단계들을 젖먹이’, ‘유아’, ‘어린아이라는 말로 구별한다고 설명합니다. 독자에게는 이 구별이 낯설 수 있습니다. 세 표현 모두 나이가 어린 존재를 가리키므로, 단순히 같은 뜻을 반복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들이 사랑의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고 밝힙니다.

 

먼저 젖먹이의 사랑은 어머니나 유모를 향한 부드러운 사랑에 비유됩니다. 젖먹이는 자신을 돌보는 이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받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사랑의 한 단계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젖먹이가 어떤 교리를 알고 있거나 자신의 사랑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어머니나 유모와 맺는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부드러운 사랑의 모습입니다.

 

유아의 사랑은 부모를 향한 사랑에 비유됩니다. 젖먹이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관계 안에서 나타나지만, 스베덴보리는 이를 별도의 단계로 구별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단계에서는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을 향한 체어리티를 말합니다. 세 표현을 나란히 놓으면, 스베덴보리가 사랑을 추상적인 감정 하나로만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관계를 통해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가 가르치는 사람을 향해 품는 체어리티라는 표현을 단순히 선생님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430은 교사에 대한 복종을 체어리티의 정의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린아이와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의 관계를 사랑의 한 단계를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어린아이가 나타내는 체어리티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 단계를 실제 나이에 따라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적 성장표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AC.430의 직접적인 설명은 말씀에서 젖먹이와 유아와 어린아이가 순진무구와 사랑의 세 단계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성인의 영적 상태를 실제 나이와 일대일로 대응시키거나, 한 단계에 있는 사람이 다른 단계에 있는 사람보다 반드시 더 거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번 번호의 설명을 넘어섭니다.

 

이 구별은 렘44:7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됩니다. 그 말씀에서는 남자와 여자뿐 아니라 유아와 젖먹이까지 끊어 버려 남은 것이 없게 하려느냐고 묻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남자와 여자가 이해력과 의지, 곧 진리와 선을 나타내며, 유아와 젖먹이는 사랑의 첫 단계들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진리와 선에 관한 표현뿐 아니라 사랑의 첫 단계들에 관한 표현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도 바로 그 구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젖먹이와 유아와 어린아이는 말씀에서 단순히 같은 연령대를 반복하여 가리키는 표현이 아닙니다. AC.430에서 이들은 순진무구와 사랑의 세 단계를 나타내며, 어린아이는 특별히 체어리티와 연결됩니다. 이러한 구별을 알면 말씀에 등장하는 작은 표현 하나에도 서로 다른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430 심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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