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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5, 창4:25, ‘같은 사람과 아내가 다시 나오는데 왜 다른 교회를 의미하는가?’

bygracetistory 2026. 9. 28. 17:03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AC.435

여기서 ‘사람’(man)과 그의 ‘아내’(wife)가 앞에서 아다와 씰라로 나타낸 새 교회를 뜻한다는 것은 누구도 문자적 의미만으로는 알 수도, 추론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그의 아내’(man and his wife)는 앞에서는 태고교회와 그 후손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뜻으로는 매우 분명하며, 또한 바로 다음 장인 창5:1-4에서 사람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이 셋을 낳는 일이 다시 언급되면서도 전혀 다른 말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합니다. 그 경우에는 태고교회의 첫 후손이 뜻해집니다. 만일 지금 다루는 이 구절이 그와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을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에서는 사람의 창조와 땅의 열매들과 짐승들의 창조가 다루어지고, 이어 2장에서 그것들이 다시 다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1장에서는 영적 인간의 창조를 다루는 반면, 2장에서는 천적 인간의 창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것이 반복하여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뜻해지는지는 속뜻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문맥의 연결 자체가 앞에서 제시한 의미를 확증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사람’[homo]과 ‘아내’(wife)는 지금 다루고 있는 모교회(parent church)를 뜻하는 일반적인 용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That the “man” and his “wife” here mean the new church signified above by Adah and Zillah no one could know or infer from the literal sense, because the “man and his wife” had previously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nd its posterity; but it is very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mmediately afterwards, in the following chapter (verses 1–4), the man and his wife, and their begetting Seth, are again mentioned, but in entirely different words, and in this case there is signified the fir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If nothing else were signified in the passage before us, there would be no need to say the same thing here: in like manner as in the first chapter the creation of man, and of the fruits of the earth, and of the beasts, is treated of, and then in the second chapter they are treated of again, for the reason, as has been said, that in the first chapter it is the creation of the spiritual man that is treated of, whereas in the second chapter the subject is the creation of the celestial man. Whenever there is such a repetition in the mention of one and the same person or thing, it is always with a difference of signification, but what it is that is signified cannot possibly be known except from the internal sense. Here, the connection itself confirms the signification that has been given, and there is the additional consideration that man [homo] and wife are general terms which signify the parent church that is in question.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1-4)

 

해설

AC.435는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를 왜 앞의 아다와 씰라로 나타낸 ‘새 교회’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들은 당연히 아담과 하와입니다. 더구나 바로 다음 장인 창5:1-4에서도 다시 아담과 그의 아내, 그리고 셋의 출생이 나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창4:25과 창5:1-4의 기록이 속뜻으로는 서로 다른 교회를 다룬다고 말합니다. 창4:25에서는 아다와 씰라로 앞서 나타낸 새 교회를, 창5:1-4에서는 태고교회의 첫 후손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이것은 문자적 의미만으로는 ‘알 수도, 추론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대목입니다. 독자가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를 이전부터 등장한 아담과 하와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앞에서는 같은 표현이 태고교회와 그 후손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말씀의 속뜻은 동일한 인물이나 표현에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의미만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지금 어떤 교회와 어떤 상태가 다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가 이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말씀의 ‘반복’입니다. 창4:25에서 이미 사람과 그의 아내가 셋을 낳았다고 했는데, 창5:1-4에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와 셋의 출생이 다시 기록됩니다. 만일 두 기록이 속뜻으로도 완전히 같은 내용을 말한다면 같은 이야기를 다시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겉으로 비슷한 기록을 통해 서로 다른 내적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지가 됩니다.

 

그 예가 바로 창1과 창2입니다. 두 장 모두 사람과 창조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보면 같은 창조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창1은 영적 인간의 창조를, 창2는 천적 인간의 창조를 다룹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람과 사물이 다시 등장하더라도 속뜻으로는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원리를 창4:25과 창5:1-4에도 적용합니다.

 

이 설명은 창4의 가인 계열과 창5의 셋 계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도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문자적인 족보만 따라가면 아담과 하와에게서 가인으로 이어지는 계열과 셋으로 이어지는 계열이 서로 나란히 진행된 두 혈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4에는 가인의 후손들이 이어지고, 창5에는 셋을 통한 아담의 계보가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AC.435는 이러한 문자적 계보 관계를 그대로 속뜻의 교회 역사에 옮겨 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창4:25의 사람과 아내와 셋을 설명하면서도, 곧이어 창5:1-4에 다시 등장하는 사람과 아내와 셋은 ‘태고교회의 첫 후손’을 뜻한다고 명시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문자적으로는 같은 아담과 하와와 셋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속뜻으로는 서로 다른 교회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창4의 가인 계열과 창5의 셋 계열을 단순히 ‘한쪽은 악한 계열, 다른 한쪽은 선한 계열이며 두 계열이 처음부터 병행했다’는 식으로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창4의 모든 교회 상태가 시간적으로 완전히 끝난 다음 창5의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이 글 하나만으로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AC.435가 직접 밝히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곧 말씀의 족보와 반복되는 인물들은 단순한 시간 순서나 혈통 관계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교회와 그 교회의 상태들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4와 창5의 관계 역시 문자적인 계보의 선후 관계만으로 결정하기보다, 각 장에서 스베덴보리가 어떤 교회와 어떤 상태를 다루고 있는지를 따라가며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이를 한 번 더 정리합니다. ‘사람’[homo]과 ‘아내’는 지금 다루고 있는 ‘모교회’(parent church)를 뜻하는 일반적인 용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아내’라는 표현 자체가 언제나 특정한 하나의 교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4:25에서는 아다와 씰라로 나타낸 새 교회가 지금 다루는 모교회이고, 창5:1-4에서는 태고교회의 첫 후손이 다루어집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문맥과 속뜻에서 다루는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AC.435는 창4:25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세기 초반 전체를 읽는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같은 사람과 사건이 반복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영적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1과 창2가 각각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창조를 다루듯, 창4:25과 창5:1-4의 사람과 아내와 셋도 속뜻으로는 서로 다른 교회적 내용을 다룹니다. 따라서 가인과 셋의 계보 역시 문자적인 두 혈통의 병행이라는 틀만으로 이해하기보다, 태고교회와 그 후손 가운데 일어난 여러 교회의 형성과 변화라는 더 큰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AC.436-437은 이제 그 가운데 ‘셋’과 ‘다른 씨’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더 밝혀 줄 것입니다. (AC.435 해설)

 

 

 

AC.434, 창4:25, ‘셋은 왜 새로운 신앙을 의미하는가?’ (AC.434-437)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homo]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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