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창5를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족보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고...’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 출생과 죽음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읽을 때 이 이름들을 사람의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AC.468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호하게 ‘이 장의 이름들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교리들 또는 교회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창5의 문자적 형태를 부정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말씀의 속뜻으로는 이 족보가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일까요?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본문이 족보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속뜻으로 그 이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AC.460-468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의 이름들을 통하여 태고교회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와 교리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했는지를 읽습니다. 따라서 AC.461의 ‘사람’은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AC.462의 ‘셋’은 그보다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를, AC.463의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는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를, AC.465의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를, AC.466의 ‘노아’는 열 번째 교회이자 새로운 고대교회를 나타냅니다. 창5의 족보 전체가 속뜻으로는 ‘교회의 계승과 상태 변화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창4와 창5를 읽을 때 생기는 중요한 질문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4에서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등장한 뒤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에게 셋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창5의 속뜻에서는 셋이 태고교회에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교회’라고 합니다. 만일 창4와 창5를 하나의 평면적인 연대기적 족보로만 읽으면서 동시에 각 이름을 교회의 순번으로 대응시키려 한다면 이 둘은 쉽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읽는 속뜻의 층위에서는 창4와 창5가 각각 교회의 서로 다른 영적 역사를 펼쳐 보입니다. 따라서 창4에서 어떤 이름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온다는 문자적 서술 순서를 그대로 창5의 ‘첫 번째 교회, 두 번째 교회...’라는 영적 계승 순서에 옮겨 놓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AC.468은 이 문제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앞 장, 곧 창4에서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이미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창5의 이름들 역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들’, 여기서는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 이름으로 표현되는 영적 성질과 상태를 담을 수 있다는 상응의 원리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에녹’, ‘라멕’, ‘노아’라는 이름을 만날 때 속뜻이 묻는 첫 질문은 ‘이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이 이름을 통하여 말씀은 어떤 교회 상태를 나타내는가?’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그러므로 아담, 셋, 에녹, 노아라는 역사적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AC.460-468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 대목에서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속뜻으로는 이 이름들이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성 자체에 관한 질문과 속뜻으로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구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우리가 AC를 따라갈 때 우선 붙들어야 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문자적 본문은 족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속뜻은 교회와 교리의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창5의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인 형식도 새롭게 보입니다. 이름이 나오고, 나이가 나오고, 낳았다고 하고, 다시 살았다고 하고, 마침내 죽었다고 하는 동일한 구조가 계속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족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서 시작된 어떤 영적 상태가 다음 교회로 전달되고 변화하며 마침내 쇠퇴해 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각 이름과 수, 그리고 ‘낳음’과 ‘죽음’의 표현은 이후 본문 해설에서 각각 교회의 상태와 그 변화라는 관점에서 풀리게 됩니다.
결국 창5의 이름들을 교회와 교리로 읽는 것은 문자적 본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안에 담긴 더 깊은 말씀의 흐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표면에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낳는 족보가 있고, 그 안에는 한 교회의 상태가 다음 교회의 상태로 이어지는 영적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 흐름의 끝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노아’라는 리메인스가 남습니다. 이것이 창5의 족보를 단순한 고대인의 명단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어 가시고 쇠퇴 가운데서도 어떻게 다음 교회를 준비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게 하는 열쇠입니다. (AC.460-468 심화)
AC.468, 창5, ‘노아는 교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리메인스를 가리킨다’
속뜻 AC.468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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