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스베덴보리의 렌즈

SY.113, ‘결혼은 꼭 해야 하는가’

bygracetistory 2026. 10. 19. 11:36

결혼은 꼭 해야 하는가 - 결혼의 의무보다 더 깊은 ‘결합’의 질서

 

성경은 결혼을 매우 귀하게 말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주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질서를 세우십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결혼을 단순히 인간 사회를 유지하거나 자녀를 낳기 위한 제도로 보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는 더 깊은 영적 원형이 있으며, 그것은 ‘선’(good)과 ‘진리’(truth)의 결합이고, 가장 높은 차원에서는 주님과 교회의 결합에 그 근원을 둡니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은 창조 질서 안에 놓인 매우 깊고 거룩한 결합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혼이 창조 질서에 속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모든 개인에게 결혼을 의무로 부과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여러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바울도 고린도전서 7장에서 독신의 삶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하고 귀한 질서이지만, 결혼 여부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결혼애’(Conjugial Love)를 통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깊어집니다. 참된 결혼 사랑은 지상에서 일정 기간 함께 사는 법적·사회적 제도에 그치지 않고 영원한 삶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결혼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결혼 사랑의 가능성이 영원히 닫히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을 향한 내적인 삶을 살며 참된 결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사후에도 자신과 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배우자를 만나 결합할 수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현세의 미혼은 영원한 독신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과 내적으로 맞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는데도 ‘하나님께서 결혼하라고 하셨으니 누구하고든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혼의 본질을 오히려 거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핵심이 두 사람의 참된 결합이라면, 결혼이라는 외적인 형식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관계를 억지로 결혼이라는 형식 안에 넣는 것이 독신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영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결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특히 ‘혼자가 편하기 때문에’, ‘내 자유를 침해받기 싫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맞추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깊은 결합을 거부한다면 그 내면의 동기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결혼 사랑에는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기며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을 이루어 가는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프로프리움’(proprium)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의 결합 자체를 거부하는 독신과, 자신의 형편과 소명 안에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독신은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내적으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결혼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참된 결혼 사랑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부부이면서 서로를 지배하고 이용하고 상처 입히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혼인신고가 두 사람의 영혼을 자동으로 결합시키지는 않습니다. 반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정결과 책임, 이성에 대한 존중,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배려하는 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은 ‘결혼했는가, 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성경적 난제가 따라옵니다. 주님은 부활에 관하여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결혼이 없다는 뜻일까요?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천국에서 남녀의 결합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지상의 혈통을 이어가기 위한 자연적 혼인과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결합을 구별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별도로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국에도 결혼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스베덴보리의 결혼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다음 단계입니다.

 

결국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주님께서 세우신 매우 귀한 창조 질서이지만, 모든 사람이 지상에서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여부가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외적인 상태보다 그 사람 안에서 어떤 사랑이 형성되고 있는가입니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배우자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참된 결합을 이루어 가는 길이 있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장차 참된 결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은 ‘나는 누군가와 참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가?’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보면 결혼의 궁극적인 의미는 단순히 배우자를 ‘얻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선과 진리가 결합하듯 서로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지상에서 배우자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결혼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