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스베덴보리의 렌즈

SY.123,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실 때가 있지?’

bygracetistory 2026. 10. 21. 16:01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실 때가 있지?’ - 주님은 내 편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는 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실 때가 있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상당히 절실하게 생기는 질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일이 내가 바라던 방향과 정반대로 흘러갈 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상대방이 잘되고 내가 손해를 볼 때, 분명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막힐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은 왜 저 사람을 막아 주시지 않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지? 하나님이라면 적어도 내 편은 되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보면 여기에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주 쉽게 혼동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언제나 내가 원하는 쪽을 지지하신다’는 것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5장에는 이 문제를 놀랍도록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리고를 앞둔 여호수아가 칼을 든 존재를 만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고 묻습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은 우리 편입니까, 저쪽 편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입니다(수5:13-14).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우리 편인가?’를 물었지만, 질문의 방향 자체가 바뀝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질서 안에 서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그쪽에 합류하시는 분이 아니라, 선과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특별히 우선 처리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녀를 정말 사랑한다면 자녀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린아이는 사탕을 더 달라고 하고 위험한 곳에도 가고 싶어 하지만, 부모는 때로 ‘안 된다’고 합니다. 아이의 눈에는 그 순간 부모가 자기 편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거절이 사랑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섭리 역시 우리가 당장 원하는 행복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을 바라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주님의 섭리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적합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주님께서 내 편이 아니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실제로 나에게 선한 것인지 나는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 일이 잘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이지’, ‘저 사람이 잘못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 사람을 꺾으셔야 해’, ‘나는 옳으니까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풀어 주셔야 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진실한 정의감과 함께 자기 사랑, 인정받고 싶은 욕망, 상대방이 패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프리움’(proprium)은 신앙의 언어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때때로 내가 원하는 ‘승리’를 주시는 것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것을 보게 하시는 쪽을 택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일으켜 나를 훈련시키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섭리론에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악을 허용하시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 때문에 주님께서 허용하시는 고통과 악이 있으며, 주님께서 그 악 자체를 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단 허용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끊임없이 사람을 선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실패나 고난을 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부러 이것을 보내셨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의 섭리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방향으로 쉬지 않고 역사합니다.

 

여기서 ‘내 편’이라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내 편’이라는 것이 ‘내가 옳든 그르든 나를 지지해 주는 것’을 뜻한다면, 주님은 결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편이 아니십니다. 내가 거짓을 말하면 상대방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주님께서 내 거짓을 진리라고 해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저 사람은 악인이니까 하나님도 내 미움을 인정하시겠지’라고 생각해도 주님께서는 미움을 선으로 바꾸어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편을 들어 진리를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진리의 편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내 편’이라는 말을 ‘나의 영원한 선을 바라시고 끝까지 나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철저하게 우리 편이십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할 때조차 즉시 버리지 않으시고, 나의 자유와 ‘합리성’, 곧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보존하시면서 계속 돌아올 길을 마련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보다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바로 그것 때문에 주님이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아이 둘이 싸우는데 한 아이가 부모에게 ‘엄마는 누구 편이야?’라고 묻는다면 좋은 부모는 무조건 자기 아이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이가 잘못했다면 오히려 자기 아이를 바로잡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 잘못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것보다 훨씬 완전합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내 악’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나를 구원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붙들고 있는 악과 거짓에는 반대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주님이 ‘나를 반대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사실은 주님께서 ‘내 안의 나를 파괴하는 것’을 반대하고 계시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의미도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편으로 끌어오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세운 계획을 하나님께 설명하고 승인을 받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점점 내가 주님의 뜻과 질서에 맞추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보여 주신 기도의 질서는 깊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은 자신의 뜻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 아래 두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 제 편이 되어 주십시오’에서 조금씩 ‘주님, 제가 주님의 편에 서게 해주십시오’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나눈 여러 질문과도 하나로 이어집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나는 전도를 많이 했으니 구원받을 거야’, ‘나는 주님께 헌신했으니 큰 상을 받을 거야’, ‘나는 죽으면 곧 주님 품에 안기겠지’라는 말들에는 공통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도, 전도도, 헌신도, 천국의 소망도 모두 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주실 것인가?’에 머물면 신앙의 중심에 여전히 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듭남’(regeneration)은 그 중심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과정입니다. ‘주님께서 내 뜻을 이루어 주시는가?’에서 ‘나는 주님의 뜻을 사랑하게 되었는가?’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실 때가 있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지만, 언제나 내 욕망의 편을 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안의 거짓과 악에는 반대하시며, 내가 선과 진리의 편에 서도록 이끄십니다.’

 

조금 더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은 내가 옳기 때문에 내 편이 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옳은 것의 편에 서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하나만 남긴다면 이것을 택하겠습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점점 하나님의 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특권에서 거듭남으로, 보호받을 권리에서 아버지를 닮아 가는 삶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SY.122, ‘나는 사후 눈 뜨면 주님 품에 안겨 있겠지?’

‘나는 사후 눈 뜨면 주님 품에 안겨 있겠지?’ - 죽음 직후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예수 믿으니까 죽은 뒤 눈을 뜨면 곧바로 주님 품에 안겨 있겠지.’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

bygrace.kr